신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는 지금껏 어정쩡했다. 반대하고 비판했지만 강도는 미지근했다. 4·15 총선을 앞둔 지난해 말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안을 합의로 통과시킨 데다 '서진(西進)'을 위해 충청권 표심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그러나 지난 8일 85개 국가기관 이전을 골자로 하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의 발표 이후 분위기가 돌변했다. 이전계획을 막기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9일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천도(遷都)라고 볼 수 있다"는 김안제 신행정수도이전추진 위원장의 입장표명도 그렇거니와 이에 대한 여론의 분위기가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점을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입장 변화는 10일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 동안 비공식적으로 표명했던 '국민투표' 추진 방침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신행정수도이전 특별법의 개념이 바뀌어 핵심기관이 다 옮겨가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 "이런 일을 국민의 공감대 없이 추진하는 것은 문제인 만큼 여론조사와 공청회를 실시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김덕룡 원내대표도 "행정수도 이전이 왜 천도로 바뀌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대로 단순히 행정의 중심을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 대부분이 이전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바뀐 만큼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아봐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조만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도이전문제 특위'(위원장 이한구 의원)를 구성,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이런 가운데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한 비판 공세도 계속됐다. 한선교 대변인은 논평에서 "후손에게 물려줄 수도이전이 졸속·부실이 돼서는 안된다"면서 "신중하지 못한 대통령의 언행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신중하지 못한 천도는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재원조달 방안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없는 졸속행정의 전형적 표본"이라며 "백년 대계인 천도가 국민적 합의 없이 이뤄진다면 '십년 소계'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