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누군가 비디오를 보다가 다시 처음부터 되돌린다면 그 영화는 ‘메멘토’(Memento)일 확률이 높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좇다 보면, 관객 자신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앞부분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각본을 쓰고 25일만에 촬영한 이 영화는 감독과 관객의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이다.
영화는 사건 진행을 거슬러 보여준다. 이를 순차적으로 짜맞추면 이런 내용이다.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의 집에 강도가 든다. 레너드는 야구배트에 맞아 10분 이내의 일만 기억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인슐린 주사를 과도하게 투입해 죽게 만든다. 레너드는 그러나 아내가 강간범에 의해 살해됐다고 생각하면서 존 G라는 범인을 찾아 미국 전역을 떠돈다. 수많은 존 G를 죽이지만 그는 그 사실을 기억 못한다….
단순한 플롯이라고 단정짓지 마시라. 영화는 정확히 이를 거꾸로 보여준다. 좀 전의 기억을 못하는 주인공만큼이나 관객도 답답하다. 자신이 간 장소와 만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몸에 문신을 하는 레너드의 행적은 귀기(鬼氣)에 다름 아니다. 레너드 앞에 나타난, 존 G가 본명인 경찰관 테드(존 판토리아노)와 술집여자 나탈리(캐리 앤 모스)의 정체도 막막하기만 하다. 2000년작. 15세 관람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블라인드 호라이즌
'잃어버린 기억 속에 숨어있는 범인을 찾아라.' '블라인드 호라이즌(Blind Horizon)'의 주인공(발 킬머)에게 주어진 과제다. 언뜻 보면 단기 기억상실증을 다룬 '메멘토'와 흡사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메멘토를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주인공은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한가운데서 총을 맞은 채 발견된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그는 미국 대통령이 암살될 것이라는 사실만 안다. 시간, 장소, 범인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기억을 더듬어 대통령의 암살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은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딱 좋은 소재다. 이를 노리듯 이 작품은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과거와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교묘하게 엮어놓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억상실증이 결코 만만하게 다룰 소재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연출로 데뷔한 마이클 하우스만 감독은 그저 난해한 퍼즐처럼 이야기를 복잡하게 얽어놓았을 뿐이다.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는 치밀한 복선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없다. 결정적으로 이야기의 짜임새가 부족하고 인물들의 관계 설정이 부자연스러워 긴장감이 떨어진다.
반전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해서 스릴러를 많이 본 팬이라면 초반에 주인공의 정체를 알아챌 수도 있다. 주인공의 뚜렷하지 않은 기억처럼 의도적으로 뿌옇게 만든 화면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작품. 2004년. 15세 관람가.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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