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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국민연금, 새 판을 짜라

입력
200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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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거세다. 요즘은 무슨 일만 생기면 촛불시위를 벌이고 헌법소원을 내는데, 국민연금문제도 비슷하게 돼 간다. 개정안 저지와 국민연금 폐지를 위한 3차 촛불집회가 19일에 열릴 예정이며, 인터넷에서는 1,000만 사이버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연금폐지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는 "내가 든 한 자루의 촛불이 나와 내 가족의 권리를 지키는 수호등이 될 것"이라며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이처럼 조직적 반대와 저항운동이 벌어진 일은 없었다.사실 보건복지부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그 동안 편하게 제도를 운영해왔다. 불만과 반발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미미했고, 사회보험 성격을 갖는 국민연금의 강제성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법개정안이 16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새 국회를 맞은 시점에서 유례없는 조직적 반대에 부딪혔다. 국무회의가 법개정안을 다시 의결하고 복지부가 강제징수 완화조치를 서둘러 발표할 정도로 당혹스러운 사태를 맞은 것이다.

총선을 앞둔 16대 국회가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폐기된 개정안을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그대로 다시 국회에 제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땜질처방이라는 비난을 받은 강제징수 완화에도 문제점은 있다. 저소득층을 위해 일정기간 보험료 연체금을 면제하는 것으로는 납부예외자·거부자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신용불량자 소득감소자 등에 대한 배려는 지역가입자들을 중심으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납부예외자가 전체의 46%나 되는 판에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액이 감소하면 직장가입자들의 연금액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안목에서 볼 때 지금의 반발은 국민연금 발전을 위한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확인해야 할 원칙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국민연금을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서둘러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법을 개정하되 새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사실 노후대책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국민연금 만한 상품은 없다. 제도의 취지 중 하나인 사회통합 면에서도 국민연금은 존속돼야 한다. 모든 예비노인들의 노후를 공동으로 부담한다는 점이 망각돼서는 안 될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2047년이면 기금이 바닥난다.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조정하지 않으면 후세대의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법 개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내고 덜 받는 게 문제인데, 이 부분은 처음부터 제도 설계가 잘못돼 있었다. 도입 당시 월수입의 3%만 내고 은퇴 직전수입의 70%를 받게 했던 것을 정부는 1998년에 40%로 낮추려 했지만 표를 의식한 국회가 60%로 조정해 버렸다. 그 뒤 15.85%를 내고 50%만 받도록 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진 상황이다. 일본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법안을 며칠 전 통과시켜 10월부터 시행한다. 1961년 실시 이후 1985년 한 차례 개혁을 하고도 그 한계가 드러나 다시 고친 것이다. 연금문제로 몸살을 앓는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일찍 문제가 노출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각지대가 커 국민연금이 계속 '남의 잔치'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가 별도로 가동돼 내년 1월에나 최종 보고서가 만들어지는데,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다층소득보장체계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법은 고쳐야 하지만 국민연금만 생각하는 개정이어서는 안 된다.

/임철순 논설위원실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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