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지만 2학년이 되자 강릉 시내에 사는 아이들이 더욱 부러웠다. 내가 사는 마을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데, 봄부터 시내엔 텔레비전이 나온다고 했다.다른 건 몰라도 텔레비전은 강릉지역이 참 늦게 나왔다. 대관령에 중계탑을 세워 전파를 쏘아주어야 하는데, 그동안은 군사상 보안 때문에 중계탑을 세우지 못하다가 뒤늦게 그걸 세워 강릉지역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얘기였다. 학교에 가면 시내에 사는 친구들이 노는 시간마다 연속극 '여로'에 대한 얘기를 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그 연속극에 '영구'라는 바보가 나오는 줄 알았다. '영구'를 모르면 텔레비전도 볼 수 없는 곳에 사는 촌놈이었다. 나는 대화에 낄 수도 없었다.
내 인생에서 문명으로부터 어떤 가치를 박탈당하는 경험을 그 시기에 가장 뼈저리게 하지 않았나 싶다.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학교를 다니던 중간에 대관령에 올라가 배추농사를 지었던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중심에 텔레비전이 있다. 지금 우리 아이의 눈에도 그런 것 같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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