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가·번역가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 번역이 억측이나 문장 탈락이 심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영문학자인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12일 대구가톨릭대 도서관에서 열리는 한국번역학회 봄 학술대회에서 <중 3―2 국어교과서의 번역 진단: 이윤기 역 '길 잃은 태양 마차'를 중심으로> 를 발표한다. 검토 대상이 된 글은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으로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 19∼41쪽에 실린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전으로 여겨지는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BC 43∼AD 17)의 서사시 '변신 이야기' 중 일부이다. 중>
이재호 교수는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이 번역글은 엄격히 말해 번역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억측을 가미한 의역"이라며 "원래 시에 없는 날조된 것이 수두룩하고, 틀린 것도 많으며 탈락이 심하고 표기가 잘못된 것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윤기씨가 번역 원전으로 삼은 메어리 이니스의 영국 펭귄출판사 판 영어산문 번역과 일어 번역 등을 참고한 그는 글 초반 지역배경 설정에서부터 오류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라고 나오는 이야기의 배경은 파에톤의 어머니 클뤼메네가 아이티오페이아 왕 메롭스와 결혼했다는 점으로 볼 때 지금 아프리카 북동부에 해당하는 아이티오페이아라는 설명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도 어린 시절에 이 도시에 잠깐 머물러 산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말을 믿어? 네가 태양신의 아들이라면, 나는 오시리스 신의 아들이다'는 등 원전에 없는 말들이 여러 차례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아이티오페이아를 지금의 에티오피아라거나, 원전에 그냥 인도로 표기된 것을 굳이 '힌두스'라고 번역한 뒤 인도로 풀이한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를 둘러 흐르는 강의 이름인 오케아노스를 바다의 신으로 설명했거나, 루키페르(Lucifer)라고 써야 할 금성을 루키페로스(Luciferous)라고 잘못 표기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원전에 있는 내용을 줄임 표시 없이 빼놓은 부분이 여러 군데라며 특히 글 마지막 부분에서 포플러로 변신한 헬리아스들이 흘린 눈물이 햇볕에 단단해져 호박이 되었다고만 하고, '뒷날 로마 부인네들의 장신구가 된 호박구슬이 바로 이것이다'는 문장을 빼놓아 "이야기의 멋진 결말을 김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번역은 창작과 달리 원전에 충실할 의무를 갖는다"며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원문 대조·검증을 소홀히 한 점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기씨는 이에 대해 "교과서에 실린 글은 번역이 아니라 원전의 부분을 잘라내고 덧붙인 편역, 평설"이라며 "지난해 교과서에 실리기 전 국정도서편찬위원회에 이 점을 알렸으나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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