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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17대국회]<하>이렇게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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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17대국회]<하>이렇게 바꾸자

입력
2004.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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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앙 부처에서 지난 해부터 일 하기 시작한 공무원 A씨는 지난 해 국정감사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자료를 산더미처럼 요구하고도 의원들은 시간에 맞춰 나타나지도 않았다. 장·차관은 물론이고 실무자들까지 감사장에 총 출동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정작 의원들은 중앙당 회의와 지역구민 면담 등 '중요한 정치 일정' 때문에 바빴다고 했다. A씨는 "그나마 감사가 시작 되도 기초적인 업무 추진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윽박지르기만 하는 의원들 때문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소소한 의정 활동의 행태에도 점검하고 반성해야 할 것들이 넘쳐 난다. 오직 국회에서만 용인되는 지각 습관, 권위 의식에 찌든 강압적 태도, 팀원이 아니라 아랫사람으로 보좌진을 대하는 자세 등은 고쳐야 할 대표적 국회 문화로 꼽힌다.

"잠시 후 본회의가 시작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들께서는 입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회의 개의 시각 10분 전이면 국회 사무처는 이런 방송을 한다. 그러나 제 시간에 의석에 앉아 있는 의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연되는 시간은 보통 30분. 한 사무처 직원은 "속기사와 행정부 사람들만 앉아 있는 회의장을 볼 때마다 민망한 느낌"이라면서 "대단한 정치 개혁도 좋지만 일단 시간부터 지켜야 신뢰를 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원들의 '군림하는 태도'는 특히 행정부처 공무원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준다. 공무원 B씨는 "송곳 같은 질문은 없고 오직 거친 말로 제압하려는 태도에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국감 준비를 한다면서 각종 자료 몇 년 치를 한꺼번에 요구해오면 앞이 아득해진다"고도 했다.

여성부와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지난 달 31일 의원총회에서 "장관 시절 국감장에서 보좌관이 '의원이 잘 모르는 질문 해도 그 자리에서 면박 주지 말라'는 쪽지까지 주더라"고 회고했다. 한 의원은 "정책을 가지고 의원들과 토론하면 긴장이 전혀 안 됐다"면서 "정부보다 월등하지는 않아도 그만큼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보좌진과의 관계도 문제다. 16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던 C씨는 "일방적으로 의원에게 지시만 받는 보좌진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보좌진의 견해를 무시함은 물론 걸핏하면 '원산폭격' 등 군대식 얼차려를 가했던 의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6명의 보좌진과 의원이 잘 짜여진 팀으로 움직일 때 훌륭한 정책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또 일부 의원은 보좌관을 지역구에 상주시키기도 했다. 4, 5급 보좌관들을 아예 지구당 사무실에 내려보내 지역구 관리를 전담하게 하는 것. 지구당 인건비가 보좌관 월급으로 충당된 것이다. 보좌관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급여는 당연히 세금으로 지출된다. 정책, 정무 보좌라는 원래 기능을 박탈하고 사실상 의원 개인의 집사로 보좌관을 부린 이런 행태에 대해선 법적 제재까지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의원들은 '입법 전문가' 돼야

국회개혁의 핵심이 '입법·정책기능의 제고'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는 그 동안 입법부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오지 못해왔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16대 국회는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에서는 역대 최고였지만 실제 가결된 비율은 26%에 불과해 9대 국회 이래 가장 낮았다. "의원들이 입법기능에 의해 평가 받는 점에 주목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치밀한 준비 없이 건수에 집착하는 태도는 문제"라는 국회 사무처 관계자의 지적은 17대 의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숙명여대 박재창 교수는 의원들의 정책·입법기능 제고 방안과 관련, "정책보좌 기능의 강화와 함께 국회 내 입법과정의 투명화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의원들의 정책기능 강화를 위해선 의정활동의 중심이 '정무'에서 '정책·입법'으로 옮겨져야 하고, '의원 전문화'를 지원할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이 같은 변화를 앞당기는 하나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최근 의원들이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 이전과 달리 전문지식을 보유한 고급인력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러나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에 앞서 충분한 전문인력이 입법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국회 전문가들이 정보 수집 및 조사·분석을 통해 입법활동을 지원하는 입법 조사처, 행정부가 시행하는 정책과 입법의도의 적합성을 분석하는 정책 평가처,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입법 정보처 등을 신설할 것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국회 사무처는 행정지원 중심의 사무 관리처로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이 검토중인 의정활동 지원비의 차등지급, 한나라당이 주장해온 정책개발자금 공영제 등도 정책·입법기능 제고에 일정부분 기여할 것이란 평가다.

입법과정의 투명화는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이 변질될 위험을 막기 위한 필수적 장치다. 법안이 제출되면 해당 상임위가 법안심사를 비공개 회의인 소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소위 위원 몇몇이 담합해 법안을 변질시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게 관례였다. 또 청문회·공청회를 거치도록 한 국회법 규정은 "위원회 결의로 생략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 때문에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이에 따라 국회 내 모든 논의와 의결과정을 공개하고 시민 입법청원이나 공청회·청문회 등을 제도화해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국회 베테랑' 사무처 직원의 제안

15년 동안 국회 사무처에서 일해 온 서기관 A씨는 '국회 베테랑'이라 불린다. 법안 제출과 심사 과정, 의원들의 의정 활동 등 국회 운영 전반에 대해 웬만한 것은 다 꿰뚫고 있다. 그는 출입 기자들이 국회 문제에 궁금한 게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취재원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9일 기자와 만나 17대 국회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몇 가지를 제언을 했다.

A씨는 가장 먼저 "의원들의 '양심 불량' 행태가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처 사이에 이견을 보이는 법률안에 대해 한 부처가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며 "자기 힘으로 법안을 만들어야 할 의원들이 부처가 건네준 법안을 마치 스스로 만든 것처럼 이름만 바꿔서 제출하곤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면서 "독립된 입법기관으로서 자기 이름이 새겨진 법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시민사회단체의 의원 평가가 '얼마나 많은 법안을 제출했나' 는 식으로 양을 기준으로 이뤄지다 보니 의원들이 법안 내용보다는 수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법안 하나를 내더라도 실현이 가능한 지, 예산이 충분히 뒷받침 될 수 있는 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안 제출과 심사가 가을 정기국회에 집중되는 관행도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A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부처가 법안을 정기국회에 몰아서 제출하다 보니 각 상임위 마다 하루에 수십 개씩 법안을 심사해야 하고, 결국 졸속으로 처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매년 반복된다"는 문제제기다. 그는 "임시국회에도 법안이 골고루 나눠져 제출돼야 의원들이 꾸준히 심도 있는 검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본회의에서도 많게는 하루에 30개 이상의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며 "때문에 의원들이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없이 그냥 통과만 시켜 본회의가 일종의 통과 의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안건 수를 제한하는 '가이드 라인'을 설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A씨는 "의원들이 꼭 발의하고 싶은 법안이 있는데도 예산이 얼마나 소요되고, 외국 사례는 어떤가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기는 어렵다"며 "내실 있는 입법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회 내 전문인력 확보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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