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 빛 잔디 언덕에 찔레꽃이 활처럼 휘었는데, 멀리서 보니 넝쿨은 보이지 않고 붉은 반점만이 선명하다. 금년 봄은 제비조차 구경 못하고 지나가고 어느덧 여름의 무더위는 어디선가 소나기를 만들고 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조간신문을 오후에야 펼쳐 드니, 활자의 세계와 창 밖의 세계가 너무나 극명하다.사람은 가끔 솔직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거짓말에 싫증이 나면 말이다. 그래서 콩은 콩이고 팥은 팥이며 정치는 콩도 팥도 메주도 아닌 사기이다. 엊그제 보궐선거가 끝났지만, 가장 큰 소리로 요란하게 나라 걱정을 하는 후보가 가장 믿음직스러워 보였다면 유권자는 이미 속았을 가능성이 많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교육은 참다운 지식도 비전도 아닌 막연한 기대와 애매한 약속이 어우러진 솜사탕 같은 사기이다. 월초부터 시작되는 상당수 대학들의 수시 1차 학생모집은 장사꾼들의 호객행위를 무색케 한다. 교육이란 시인 예이츠의 말처럼 마음의 그릇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고 불을 붙이는 것이 되어야 하건만, 우리 교육은 교육열만 타오를 뿐 교육 자체는 불이 꺼져있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혹시 부부 싸움이라도 하고 이 글을 쓴 줄 알겠지만, 조나단 스위프트가 말한 것처럼 세상을 가끔씩 발길로 걷어차야 한동안 다시 사이 좋게 지낼 수도 있기에 한번 해보는 것이다. 잠시 무관심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들여다보노라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특히 버린 쓰레기 단무지로 만두를 만들어 팔았다는 기사에 눈길이 이르렀을 때는 그 끔찍한 것을 한입 삼킨 듯 구토마저 느끼게 된다.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하시지만, 다이어트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어찌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제 저래 명품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스스로 묘한 명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가짜 명품일랑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예수도 찬성할 것이다.
요즘 한강이 힘들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나머지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색무취 흐르는 추상적인 시간에게 맡길 수가 없어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시간이라는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것일까? 강물은 자신의 몸 속에서 한 생명의 촛불이 꺼져가는 것을 느낀다. 본래는 따스했으나 싸늘한 주검의 체온으로 차가워지는 한강, 한강은 정말 힘들다. 잠수하면 솟구칠 줄 모르는 인간들 때문에.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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