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민주정치처럼 일상성을 지니고 있는 제도도 드물다. 민주정치의 스케줄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게 마련이다. 일정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선거가 실시되어 민심을 가늠해보고 선거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한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여야는 다음 선거를 위하여 '올인'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일상이기 때문에 이미 4, 5년 전부터 대통령 선거일이나 국회의원 선거일도 정해져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총선을 '시민혁명'이라고 규정했지만 딱히 시민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특이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또 죄지은 국회의원을 보호하고자 방탄국회를 열고 석방결의안을 낼 정도로 민심에 역행하는 과잉행위를 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회초리를 든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은 헌정사상 특기할만한 일이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민주선거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을 뿐, 경천동지할 사태는 아니다. 많은 정치 신인들의 국회진입도 파격이라기보다 정상적인 민주정치의 일환에 불과하다. 민주 선거란 '혁명'이 아닌 일상적 방식으로 민의를 가늠하는, 이른바 '종이돌(paper stone)'일 뿐이다.
허나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민주정치는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얼굴을 5년 내내, 국회의원의 얼굴은 4년 내내 보아야 한다는 것은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세상에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년해로를 약속하며 살던 부부가 황혼이혼을 하는 것도 같은 얼굴을 자주 보아야 하는 식상함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황혼이혼을 막으려면 부부가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같은 이치에서 아무리 헌법기관이라고는 하나 시민들이 같은 얼굴을 오랫동안 보아야 한다면 지겨워지지 않을까.
반면 자연현상은 반복을 그 본질로 하면서도 항상 새로움을 주고 있다. 아침마다 뜨는 해는 같은 해면서 항상 새로운 해다. 저녁에 지는 노을도 항상 같지만 노을을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춘하추동은 영원한 순환이지만 우리가 맞이하는 봄은 언제나 새로운 봄이다. 벚꽃은 매년 봄에 피지만, 봄에 피는 벚꽃은 언제나 새롭고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가. 자연이란 반복되는 것이면서도, 또 항상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도, 열린우리당도 자연의 이런 모습을 닮아야 한다. 자연처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해야 한다는 의미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이다. 패배는 병가지상사라고도 하지만 패인을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서러웠던 제3당에서 과반수여당이 되었다고 우쭐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복권에 당첨되어 일거에 인생역전한 졸부의 행태가 아닐까. 많은 서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승리의 노래가 들리고 또 여당의 유력 인사들이 어느 부처에 입각하느니 마느니하며 '미니' 권력투쟁을 벌였다면 과거 권력에 취했던 오만한 여당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노 대통령의 대결적인 자세도 대통령의 직무복귀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자기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 가까운 진보는 선으로 규정하고 어떠한 보수라도 가능성이 없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모습은 내 편과 네 편을 갈랐던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투지가 넘쳐흐르는 모습보다 통합의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새로움을 주었을텐데…
이번 재보선 참패야말로 대통령과 여당에게 매일 떠오르면서도 새 모습을 보여주는 태양처럼 되지 않으면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있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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