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 이라크 임시정부를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미 군정을 종식시키는 내용을 담은 이라크 결의안을 15대 0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로써 민주정부 수립을 향한 이라크의 여정이 궤도에 올랐다.핵심 내용
이번 결의안(1546호)의 핵심은 이달 초 유엔과 미 군정,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가 출범시킨 이야드 알라위 총리 체제가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합법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 14개월 만에 주권국가로서 국제무대로 복귀하게 됐다. 1년여 동안 이라크를 통치한 미 군정기관 연합군임시행정처(CPA)는 이달 말 주권 이양과 함께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알라위 정부는 이라크군에 대한 통솔권, 원유 생산·관리 권한 등 대부분의 주권을 넘겨받는다. 결의안은 또 그간 점령군으로 지목받아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됐던 미군 주도의 연합군 지위를 유엔이 승인하는 다국적군으로 변화시켰다. 임시정부는 다국적군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복속이 아닌, 긴밀한 협의를 통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결의안 채택 의미
결의안 채택으로 전쟁 주도국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측은 큰 짐을 덜게 됐다. 미영은 지난해 3월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많은 국가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는데, 뒤늦게나마 유엔이 전면에 나서면서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유엔을 내세워 각국의 적극적인 이라크 개입을 촉구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만장일치의 결의안 통과는 부시에게 중요한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유엔이 지난해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극심한 분열상을 보이면서 '유엔 무용론'까지 제기됐던 위기를 딛고 모처럼 화합상을 연출했다는 것도 의미가 깊다. 안보리 의장인 라우로 바자 필리핀 대사는 "어제는 우리가 이라크로 나뉘었지만 오늘은 이라크로 하나가 됐다"고 논평했다.
향후 과제
임시정부는 유엔 승인을 얻음으로써 이라크인들의 지지를 얻을 발판을 마련했지만 이것이 곧 정통성 확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시정부는 선거를 통한 의회 및 정부 구성(2005년 1월) 전까지 이라크 미래와 관련한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돼 그 권한이 제한당했다. 가장 큰 임무는 치안을 확보해 선거를 무사히 치르는 정도다.
따라서 포장만 바뀌었을 뿐, 진정한 점령 종식으로 볼 수 없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미 군정에 의해 임명된 IGC는 임시정부로 간판만 바뀌었고 점령군도 다국적군으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 본질의 변화는 없다는 것. 실제로 미국은 결의안을 계기로 각국의 추가 파병을 원했지만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주요국들이 여전히 병력 파견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은 곧 저항세력이나 테러집단이 이라크 내에서 저항운동을 계속할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각국 반응
유엔과 주요 국 정상들은 일제히 결의안 통과를 환영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회가 이라크를 돕고자 하는 진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 블레어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은 '획기적인 이정표', '미래를 향한 커다란 진전' 등의 수식어를 동원해 의미를 부여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부시 "희색"/ "이라크 국민의 승리"
"이라크 국민의 위대한 승리다." 이라크 결의안이 8일 유엔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 말이다. 그러나 말과 달리 얼굴 표정이나 몸 동작은 자신의 승리임을 과시하는 듯 강한 만족감이 배어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에 참가한 각국 수뇌들도 부시의 '승리'를 인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조금도 보태지 않더라도 (신 결의안 통과는) 커다란 진전이다. 이 같은 공적은 세운 (부시)대통령을 축복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이라크 전쟁으로 곤경에 처했던 부시 대통령에게 이번 결의안 통과는 국면전환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다. 이라크 재건과 치안 확보가 국제사회의 협력 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가장 의미가 있다.
/김이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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