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한국일보가 역사적인 창간 50주년을 맞았습니다.반세기 전, 우리 민족은 전후(戰後)의 폐허 위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암울한 실의와 혼란으로부터 새 희망을 열기 위해, 백상(百想) 장기영(張基榮) 발행인과 창간 언론인들은 자유언론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경제, 문화입국을 표방하면서 '녹색 신문' 한국일보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그 후 50년은 민족이 숨가쁘게 달려온 날들이었습니다. 나라와 사회가 경이로울 정도로 발전되었습니다. 정치민주화와 경제 선진화를 이룩했고, 문화강국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성장은 세계인들로부터 '기적'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체육분야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같은 환희의 날들이 함께 하며, 국위를 떨쳤습니다.
한국일보의 50년은 이런 역사의 격동기를 기록하고 증언하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더불어, 모든 빛나는 민족발전의 길에 동반자 역할을 한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밝음 뒤편에, 어둡고 고통스런 면도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아래서의 인권탄압이 심했고, 억압의 터널이 길었습니다. 한국일보의 사시(社是)는 '춘추필법의 정신,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큰 시련을 투철한 사시로 이겨냈는가 하는 반성으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괴감 속에서도, 언론의 정도를 지키고자 하는 한국일보인의 자기기준이 한국일보를 일류신문으로 지켜 왔다고 말씀드립니다.
필화로 자진 정간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고, 자매지 서울경제신문이 몇 년간 폐간당하는 수난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 국가 발전의 큰 동력이 되고자 노력했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밝혀두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로 징검다리를 뛰어넘으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민주주의의 목표는 아직도 멀리 있습니다. 목표는 멀지만, 과거와는 달리 가시권 내에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창간사설을 통해 밝혔던 이상(理想)을 소중하게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고, 누구도 억제할 수 없다.' 이 엄정한 선언을 정신적 유산 삼아, 새로운 민족의 포부와 희망으로 다가올 50년을 가꿔가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근래 신문업계 사정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출혈경쟁으로 인해 신문사 경영이 크게 압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의 역사에는 한국일보가 창간 10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섰던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문들이 빛 바랜 권위에 안주하던 당시, 참신한 신문에 대한 독자의 기대와 갈망이 한국일보를 짧은 기간 안에 정상의 신문으로 성장시켰던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뜨겁던 성원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정직하며, 용기 있는 신문 한국일보는 이미 세계 속의 신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모든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스스로를 변혁시키며, 정상을 향해 힘차게 다가설 것입니다.
한국일보의 경륜은 중후해져도, 녹색의 언론정신은 나이를 먹지 않고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다시 50년 후를 바라보고 약속하며, 독자 여러분과 광고주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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