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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17대 국회] <중> 미완의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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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17대 국회] <중> 미완의 정치개혁

입력
200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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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당 폐지 난기류17대 국회에서 여야 정당은 '지구당' 이라는 조직을 둘 수 없다. 16대 국회 종료 직전인 지난 3월 정치권이 '돈 먹는 하마'로 불리며 고비용·저효율 정치구조의 주범으로 지목돼 온 지구당을 폐지하도록 정당법과 선거법을 수술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돈선거, 조직선거를 원천봉쇄 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지구당 위원장이 쏟아 부었던 매월 수 천만원의 상시 운영경비가 대폭 줄어들고,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렸던 공조직을 통한 불법자금 살포관행을 상당부분 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치권이 약속한 대로 지구당 폐지가 현실화 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당장 정치개혁 차원에서 지구당 폐지에 합의했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내부에서 지구당 폐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직접적인 처벌규정을 명시하지 않은 개정 정당법의 허점을 비집고 지구당의 무늬만 바꾸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지역구 관리와 당원 조직화 등 기존의 지구당 역할을 대신하는 각종 연구소나 후원회 사무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인턴 2명을 포함해 최대 8명까지 둘 수 있는 보좌진 가운데 한 두 명을 아예 자신의 지역구로 내려보내 비공식적인 보좌업무를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구에 내려가면 하루에 많게는 수십 명을 접촉하게 데 집이나 커피숍에서 만날 수 없지 않느냐"는 게 이들의 명분이다.

최근 지역구에 사무실을 마련한 영남 출신의 한 의원은 "'조직은 곧 표'라는 인식을 끊기가 쉽지 않다"면서 "정치부패를 줄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합법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무조건 지구당을 폐지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과 낙선자를 중심으로 지구당 폐지에 강력 반발하는 등 역풍도 만만찮다. 특히 민노당은 "지구당 폐지가 국민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정당활동의 자유를 침해, 위헌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등 불복종운동을 펼칠 태세이다.

김종철 대변인은 "당비를 내는 당원에 의해 모범적으로 지구당을 운영해도 부당하게 손해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7대 총선에 낙선한 한 인사도 "지구당이 폐지되면 현역 의원만 사무소를 유지할 수 있게 돼 기득권층의 프리미엄을 인정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구당 폐지와 관련된 법 규정이 애매모호하고 지구당을 계속 유지하더라도 명시적인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선관위측은 "지구당 관련 법적 미비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구당을 종전처럼 유지할 경우 선거법상 유사기관 금지조항을 적용하거나 기부행위 금지조항 등을 적용해 상시적으로 엄격히 단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억지춘향식 법적용으로 반발을 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대 국회가 정치개혁의 최대 성과로 꼽은 지구당 폐지가 과연 제대로 실행에 옮겨질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 중앙당 구조 그대로

4·15총선을 전후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회 개혁의 주요 과제로 '원내정당으로의 변신'을 내걸었다. '중앙당 슬림화', '정책으로 승부'등 구호 속에 원내정당화는 절대 선(善)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원내정당화는 아직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다. 총선이 끝난 지 50여일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물론 밑그림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각 당이 원내정당화를 위해 한일은 원내총무의 명칭을 원내대표로 바꾼 것 밖에는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원내정당에선 의원총회가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가 된다. 당연히 당의 무게중심도 당 대표나 의장이 아닌 원내대표로 옮겨진다. 여야 모두 원내정당을 소리 높여 외친 것은 중앙당 중심의 기존 정치구조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기존 구조란 요약하자면 대선에 나설 유력 정치인이 거대한 중앙당을 이끌며 대선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넣는 시스템이다. 의원들은 원내의 본업보다 중앙당에 매몰된 부속물이었다. 비대한 중앙당 조직은 진성 당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유권자를 돈으로 동원했고, 결국 불법자금 모금 등 구태를 낳았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원내정당화 추진을 위한 방안으로 입법지원 조직과 인력보강, 상임위 중심 국회 운영,상시국회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인 당의 존재는 그대로다. 양당 공히 '중앙당을 무력화할 경우 대선 등 선거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고민에 빠져있다. 결국 중앙당-원내정당의 이중구조로 조직이 재편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당은 "기본 원칙은 공감하지만 일방적 원내정당화는 안 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당 의장과 원내대표를 같은 반열에 놓은 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그야말로 논의에만 그치고 있다.

한나라당의 내부 반론은 더욱 거세다.김문수 의원은 "국회가 권력의 중심이 아닌데 원내로만 들어가겠다는 것은 팬티만 입고 찬바람 부는 광야로 가겠다는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원내정당화는 정당이 추진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권력구조 전반에 대한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법 개정에 따라 중앙당 유급 직원을 100명 아래로 줄이는 중앙당 슬림화 작업도 진행 중이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은 300여명 사무처 직원을 줄일 계획이지만 현재 40여명만 정리된 상태다. 우리당에도 200여명 중앙당 당직자를 의원 보좌관으로 내보내는 등 살 빼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중앙당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근본 정치구조가 않고선 요요 현상처럼 언제든 다시 살이 붙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 검은돈 차단 "글쎄"

"어디 불안해서 받을 수나 있겠습니까."

여당의 A의원은 4·15 총선 후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인으로부터 "식사나 한 번 하자"는 전화를 받았지만 "다음에 보자"고 끊어버렸다. 그가 과거 관행대로 "영수증을 끊지 말고 알아서 쓰라"며 뭉칫돈을 건넬 경우 도무지 거절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자금 입·출구를 유리지갑 들여다보듯 감시할 수 있도록 한 정치자금법과 서슬 퍼런 수사망 때문에 아예 기업인들과 만남 자체를 피하고 있다는 게 A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검은 돈'은 정치권에서 사라진 것일까. 기업의 정치자금 지원이 일절 금지되고, 후원금 모금 한도까지 낮춰지면서 새 풍속도가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기업으로부터 뭉칫돈을 받던 것 대신 10만원 단위의 기부금을 '개미 후원자'들로부터 거두는 모습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한 초선 의원은 "돈을 준다 해도 지출 내역이 다 드러날 텐데 어느 누가 덥석 받겠느냐"며 "뒷돈을 받는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비용 정치의 온상으로 불리던 지구당 폐지로 지구당 관리 및 조직 운영비가 줄어들면서, 연간 후원금 한도액(1억5,000만원) 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는 게 이 의원의 얘기다. 한 중소업체 사장도 "대선자금 수사와 선거법 개정 이후 정치권의 후원금 요청이 거의 끊긴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청정(淸淨)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정치권 스스로 장담을 못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개정된 정치자금법이 오히려 불법자금 수수를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진 의원들의 경우 "지역내 경조사 및 의정 활동 비 등 현실적 부담이 만만찮은 상황에서 후원금 상한선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면 불법이나 편법을 동원하란 말이냐"는 볼멘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 눈치에 급급한 나머지 너무 비현실적인 틀을 짰다"면서 "각 당이 돈 문제로 고생을 해보면 법개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부 인사들은 후원회 계좌가 아닌 차명 계좌를 통해 친분 있는 기업주들로부터 돈을 받거나, 기업체 임원 명의로 정치자금을 전달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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