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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공계 살리기 팔걷자

입력
200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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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를 살리자는 구호가 최근 언론의 단골 메뉴이다. 지금 이공계 대학생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는 단어는 '암울'이며 이들 중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의학, 치의학 대학원 입시 준비 학원, 또는 변리사, 회계사, 계리사 등등의 각종 자격시험 준비학원에 다니고 있다. 기술 개발을 할 사람이 없는데 변리사가 무슨 특허를 내며 회사가 문을 닫는데 회계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또한 고등학교 이과 반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에 관하여 물어보면 학생들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두가 의대, 한의대, 치대로 몰리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나라의 수재들이 모두 의학을 공부한다면 의학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공계가 망하면 의학 연구도 같이 망하게 된다.

생명공학은 지금 모든 나라들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부가가치가 엄청난 미래 산업의 꽃이며 연구의 특성상 반드시 의학박사(MD)와 이학박사(PhD)가 공동으로 연구를 해야 하며 이와 같은 공동연구에서 세계적인 중요한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좋은 예로 이번에 세계적인 성과를 올린 줄기세포 연구를 들 수 있다. 지금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에서 지원하는 유전체 연구, 단백질 연구, 줄기세포 연구가 이러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등의 국가기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의 인건비 부분을 보면 박사연구원 월급의 상한선을 180만 원, 석사연구원 120만 원, 학사연구원 80만 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고 좋은 연구원을 모셔오려면 대표연구자가 연구비 사용 규정을 위배했다고 하여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즉 선의의 연구책임자들을 정부가 앞장서서 범법자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시에 많은 훌륭한 이학박사들을 다른 나라로 내몰게 되어 미래의 국가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번 줄기세포 연구책임자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연봉이 4,000만 원이고 전셋집에 산다는 것을 신문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그러나 앞으로 국가 장래를 황 교수와 같은 개인적인 자부심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희생 정신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안된다.

이렇게 진로가 암울한 현실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얼마간의 국가보조금을 준다고 누가 이공계를 가겠는가?

이보다는 황우석 박사와 같은 훌륭한 역할모델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황 교수가 유명해진 후 수의학과 수능 점수가 높아진 점을 명심해야 한다.

좀더 현실에 맞고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공계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고 절망한 경험이 있는 이공계 출신 인사들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이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매일 언론에 지겹게 보도되는 수천억 원의 정치자금이나 뇌물의 아주 일부분만이라도 지극히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정치 싸움에 쓰지 말고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업적을 내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우수 연구인력들을 지원한다면 정치인들이 못 해 낸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선진국 진입을 이공계, 의학계가 이루어내는 쾌거를 조만간 이룰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박인숙 울산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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