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의 성공한 경영인'으로 알려진 정만원(鄭萬源·52)SK네트웍스 사장의 얼굴에선 딱딱하고 틀 지워진 '공무원 출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좌중을 압도하는 눈빛, 약간 충혈된 눈, 걸걸한 목소리로 내뱉는 직설적인 말투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고, 마침내 '침몰직전의 거대기업을 회생시킨' 프로 경영인임을 한눈에 알게 해준다. "방식과 내용은 다르겠지만 월마트와 같은 세계적인 통합마케팅 회사가 되는 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그의 각지고 다부진 확신에 찬 회사비전을 듣노라면 '아직 채권단 공동관리에 있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란 꼬리표 대신 '준비된 글로벌 리더'를 떠올리게 한다.
거함(巨艦)의 재항진
4월 중순 SK네트웍스는 올해 1·4분기 매출 3조3,669억원, 경상이익 1,289억원, 에비타(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를 제외하기 전 이익) 1,008억원의 어닝 서프라이즈(예상밖의 좋은 실적)를 발표했다. 당초 목표를 15∼20% 초과한 실적이다. 분식회계 사태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지 1년여만의 화려한 재기다. 정 사장은 아예 '2010년 기업가치 10조원, 에비타 1조원 달성'이라는 중·단기 목표를 선언했다. 기업가치 국내 8위에 오르겠다는 포부다.
SK네트웍스의 회생엔 정 사장의 굳은 경영철학과 의지로 관철시킨 혹독한 구조조정이 있었다. 채권단을 설득해 회사의 존속약속을 받아낸 그는 경쟁력 있는 부문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내 경영에서의 화두는 늘 '축적과 돌파'였다. 가장 강한 요소들을 가지고 1등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다시 확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40여개 해외지사를 17개로 줄이고, 무역도 에너지, 화학, 철강을 제외한 채산성이 없는 다른 부문은 모두 정리했다. 2,700명이던 직원도 1,900여명으로 줄었다. 정 사장은 "오늘의 결과는 회사의 비전을 믿어준 채권단과 주주들, 그리고 떠나거나 남아있으면서 어려움을 참고 견뎌준 임직원들의 덕"이라고 말했다.
중국 에너지유통시장 진출 기대
SK네트웍스의 제2 도약을 설계중인 정 사장의 전략은 에너지, 정보통신, 무역 등 기존 사업골격을 강화하되 새로운 장기성장 엔진을 개발해 장착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는 "국내 종합상사중 6위였던 철강수출이 올해 2위로 올라섰다"며 "에너지와 정보통신, 무역 등 현재의 주요 사업들은 지속적인 성장엔진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7년께면 문호가 열릴 중국 석유유통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에너지소비국의 유통라인을 장악해 석유유통분야 메이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
우선은 중국 정유유통회사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자동차 경정비서비스인 '스피드메이트'를 진출시킬 방침이다. 정 사장은 "스피드메이트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되면 주유소 편의점인 OK마트를 동반 진출시킬 것이다. 이는 결국 현지 정유사와의 제휴를 통해 SK네트웍스가 중국 에너지유통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특한 사업모델로 세계시장 장악"
여기에 장기 성장엔진을 장착시켜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정 사장의 미래전략의 핵심이자 글로벌 비전이다. 그는 "연 매출 14조∼15조원에 달하는 기존 사업을 효율화 하는 것만으로도 당분간은 좋은 회사로 남는데 충분하다"며 "하지만 회사가 지속되기 위해선 지금의 경쟁력 있는 요소들로 미래 수익기반이 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독특한 사업모델로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글로벌화"라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은 통합마케팅. 곧 21세기 주요사업분야인 정보통신, 물류·유통, 문화·레저를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것이고, 주유소와 대리점 등 수천개의 유통조직과 톱 브랜드의 상품, 기존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SK네트웍스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올 연말부터 주유소에서 휴대폰을 판매하는 등 유통라인에 상품을 병합하는 낮은 차원으로 시작하겠지만 3년 정도 지나면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통합마케팅에 2,500여만명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DBM)한 '고객맞춤서비스'를 제공키로 했다.
정 사장은 "통합마케팅이 2010년에 1조원 목표 에비타중 2,000억원을 담당할 것"이라며 "축적된 노하우와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석유제품에서 교복까지… "이질적 사업 결합 세계유일의 회사"
정만원 사장은 SK네트웍스를 "세계에서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는 '유일무이한 회사'"라고 소개한다. 한 회사가 정보통신과 에너지, 무역, 유통과 상품이란 이질적인 사업을 한꺼번에 수익구조로 가지고 있는 경우는 전세계에 없다는 것이다.
SK네트웍스는 1953년에 세워진 선경직물이 모태로 사실상 SK그룹의 모회사다. 종합상사로 성장해 오던 이 회사는 99년 컴퓨터 도매업과 정보통신기기 복합매장을 운영하던 SK유통(주), 2000년 주유소를 운영하는 SK에너지판매(주)를 합병하고, 2002년엔 (주)두루넷으로부터 전용회선망 및 관련 인허가권을 각각 취득했다. 한 때 연매출 18조원이 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업분야가 결합하면서 SK네트웍스는 현재 전국적으로 3,400개의 주유소, 1,700개의 휴대폰 단말기 대리점, 500여개의 차량 정비소, 400여개의 패션매장 등 6,000여개의 소비자 접점을 보유하게 됐다. 이를 통해 석유제품에서 강판, 교복, 캐주얼 의류에 이르기까지 50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정 사장의 통합마케팅 전략은 SK네트웍스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독특한 사업구조에서 출발한다.
한편으론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조직들이 합쳐진 회사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했다는 사실은 정 사장의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회사의 한 임원은 "사실 전혀 다른 문화 탓에 30명이 모이는 임원회의에서 보고서 양식을 가지고 이견을 보일 정도였다"며 "하지만 정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러한 어긋남들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제시하는 비전이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감이 있는 데다 임직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직설적으로 진솔하게 토론하기 때문"이라며 "지방에서 터줏대감으로 일해 온 늙수그레한 주유소 지사장들이 헹가레를 쳐 준 CEO는 정 사장이 처음 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공무원서 디지털마케팅 전문가 변신/OK캐쉬백 신화 일궈내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선 정만원 사장의 약력은 아직은 비즈니스맨보다는 공무원의 경력이 더 많은 기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정 사장은 '성공한 경영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화려한 성공은 '미친듯한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소신과 함께 정보기술(IT)이라는 시대 흐름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4년 20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을 접은 것에 대해 그는 "그 때는 아기자기한 팬시아이템을 함께 파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 해 선배들의 강권으로 SK그룹에 발을 들여 놓아 커피점은 열어 보지도 못했지만 곧 그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일을 만났다. 당시 정부는 부족한 사회간접자본을 메우기 위해 민간자본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에게 이와 관련한 정보통신 분야를 검토하라는 회사의 명령이 떨어진 것. 그는 "입사 후 에너지 부문을 맡아 온 내게 '이것이 빈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때만 해도 이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인데다 국내 인터넷도 초보수준이었기 때문에 기댈 곳이 없던 정 사장은 '맨 땅에 헤딩'식으로 일에 매달렸다. 시중에 정보통신 관련 서적을 모두 끌어 모으니 40여권. 이를 5명의 팀원에게 8권씩 나누고 매일 자신의 방에 가둬놓다시피 하고 읽고, 요약하고 토론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7개월여만에 5개의 프로젝트를 뽑아내 보고했고, 이중 두 개를 직접 맡아 본격적인 정보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e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에 눈을 뜬 그는 처음으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한 적립식 할인서비스인 'OK캐쉬백'의 신화를 이뤄냈다. 정 사장은 "디지털시대에 OK캐쉬백은 단순한 할인서비스에 그치지 않습니다. 축적된 엄청난 자료는 '고객맞춤형 마케팅'을 현실화 해 이미 작지만 의미있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라는 말이 따라 붙는 그의 정보통신분야 경험은 SK네트웍스의 미래를 기획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김동국기자
■약력
1952년 경기 평택 출생
1970년 서울 중앙고교 졸업
1976년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1977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77년 제21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78년 문교부 행정사무관
1986년 뉴욕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0년 동자부 석유수급과장
1993년 통상산업부 구주통상과장
1994년 SK그룹 SOC추진본부 이사
2000년 SK텔레콤 무선인터넷사업부문장
2003년 SK네트웍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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