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마티스 이후로 색채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작가"라고 평한 마르크 샤갈(1887∼1985).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샤갈은 100년 가까운 생애동안 지칠 줄 모르는 창작 활동으로 유화를 비롯해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무대 장식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편의상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어떤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슬라브 민족의 환상과 유대교의 신비를 융합시켜 독창적 화풍을 구축한 특이한 작가였다.1910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샤갈은 1912년 앙데팡당전 출품에 이어 1914년 독일 베를린에서의 첫 개인전을 열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3년 후 결혼을 계기로 러시아로 돌아갔으나 사회주의혁명이 거쳐간 조국은 그의 환상적인 화풍을 수용하지 못했다. 다시 1922년 러시아를 떠난 샤갈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 세계대전 등 세계사의 굴곡을 겪으며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이국을 떠돌며 방랑자적, 경계인적 삶을 살았다.
파리 시절에는 피카소, 시인 아폴리네르 등과 교유했으며 미국 망명 후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1950년 남부 지역 생폴드방스에 정착해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조국을 떠난 지 51년이 지난 1973년에야 샤갈은 러시아를 방문해 모스크바 트레티아코프 미술관에서 석판화전을 개최했다. 고향 비테프스크, 삶의 동반자였던 두 아내는 샤갈에게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자 연인이었고 언제나 그림의 주제였다.
대표작으로 '나와 마을'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바이올린 연주자' '기도하고 있는 유대인' 등이 있으며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벽화도 그의 작품이다. 자서전 '나의 인생'(1965)이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20세기 최고의 색채화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 샤갈 최고의 작품들이 한국에 온다. 한국일보사가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7월 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색채의 마술사―마르크 샤갈' 전은 그 내용, 규모에서 한국 전시 사상 새로운 획을 긋는 전시가 될 전망이다.
최고 품격·최대 규모의 전시
샤갈의 한국전은 프랑스 최고의 미술관인 파리의 그랑 팔레(2003년 3월 14일∼6월 23일)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년 7월 26일∼11월 4일) 전에 이어 열리는 순회전 성격이다. 20세기를 관통하는 모든 미술운동과 사조를 풍미하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화풍을 창조한 샤갈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보여준 그랑팔레 전은 5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모았고, 샌프란시스코전은 역대 전시 중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시에는 50∼100호 이상의 대작들을 위주로 샤갈의 대표작을 망라한 60여 점의 유화와, 판화 데생 과슈 등 모두 120여 점이 나온다. 세계 각지의 권위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한 대가의 대표작들을 이만한 규모로 모아 회고전을 여는 것은 국내 처음 있는 일이다.
전시작들은 프랑스 니스의 국립샤갈미술관 소장품 60여 점을 필두로 모스크바 국립트레티아코프화랑, 스위스 샤갈재단, 파리 퐁피두센터, 파리시립미술관의 소장품들로 구성됐다. 대가의 대표작들을 모아 그 미술사적인 의미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선진적 전시 양식의 표준적인 전시라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
샤갈은 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면서 유독 한국인에게 더없이 친숙한 화가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말 프랑스 한 미술잡지의 조사에서 샤갈은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에 이어 대중적 인지도 5위의 작가로 꼽혔다. 그러나 고흐의 명성이 작가의 비운의 삶에, 피카소의 영광이 그의 천재성에 기인한 바 크다면 샤갈은 오로지 작품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작가이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 그려진 이미지처럼 자신의 고향 마을 러시아 비테프스크를 꿈꾸며 그린 샤갈의 그림들은 인간의 원초적 향수와 동경, 꿈과 희망, 사랑과 낭만, 무엇보다 순수성의 표현이다.
이번 전시의 공동 커미셔너 서순주(43·미술사 박사)씨는 "추상화풍이 휩쓸었던 20세기에 그는 전 생애에 걸쳐 구상에 충실하면서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했던 작가였다"고 말한다. '파란 풍경 속의 부부'등에서 보는 것처럼 샤갈은 푸른색과 붉은색을 위주로 한 화려하고 따뜻한 색채로 삶을 긍정하고 평화를 노래했다.
전시 구성·일정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파리(1923∼1941)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1941∼1948)해 활동하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정착(1948∼1985)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이런 시기별 대표작들을 크게 7가지 테마로 나눠 보여준다. 1부는 연인, 2부 상상의 세계, 3부 프랑스 시기, 4부 서커스, 5부 성서 이야기, 6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7부는 지중해.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가 1920년 모스크바 연극 극장의 패널화로 제작한 '유대인 극장' 시리즈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는 점. '무용' '음악' '문학' '연극' 4점의 시리즈로 제작된 이 작품은 각각 2m15㎝갽1m10㎝의 대작으로 그의 예술적, 철학적 영감과 향후 그림의 모티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작으로 꼽힌다. 1970년대에 발굴돼 스위스 샤갈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보수 작업을 거친 이 시리즈는 1995년 파리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지난해 그랑팔레 전에 이어 세계 전시사상 세번째로 이번 한국전에 소개된다. 또 마을 풍경과 공중을 나는 연인의 모습 등 샤갈의 모티프가 다 담겨있는 '도시 위에서'는 그가 최초로 그린 대작이자 대표작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샤갈전은 10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뒤, 11월 10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계속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 포레이 佛 샤갈미술관장 인터뷰
"샤갈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샤갈 전의 공동 커미셔너인 장 미쉘 포레이(62) 프랑스 국립샤갈미술관장이 전시 준비 차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달 초 한국을 방문했다. 프랑스 니스에 있는 샤갈미술관은 당초 성서를 주제로 한 샤갈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1973년 문을 열었으며 정식 명칭도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이야기 미술관. 구약성서 내용을 표현한 대형 유화 17점을 중심으로 회화, 스테인드글라스, 과슈, 판화 등 샤갈의 작품 800여 점을 소장해 전시한다. 이번 한국 전에는 성서 이야기를 담은 유화와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의 내용을 형상화한 판화 등 60여 점을 내놓았다.
포레이 관장은 "20세기 미술사에서 샤갈 만큼 삶의 밝은 측면을 노래한 작가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191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샤갈이 평생을 거쳐 구축한 다양한 작품 세계를 테마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샤갈이 어떻게 다양한 주제를 형상화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포레이 관장은 퐁피두센터 근대미술관과 파리시립미술관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2000년부터 샤갈미술관과 함께 피카소미술관, 페르낭 레제 미술관 관장도 겸하고 있다.
/문향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