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8일 열린우리당 이해찬(52) 의원을 새 총리로 지명한 것은 참여정부 2기 국정 운영이 '강력한 개혁'에 비중이 두어질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또 상당수 장관들보다 나이가 적은 '50대 초반 총리'가 등장함으로써 행정부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개혁 대통령과 안정 총리의 조화'를 내세웠던 참여정부 1기와는 달리 2기에는 '개혁 대통령과 개혁 총리'로 컨셉을 잡은 것이다.우리당 문희상 의원이 "노 대통령이 개원 국회 연설에서 밝힌 부패청산, 정치 개혁 등을 추진할 수 있는 돌파력 있는 당내 인사가 총리에 기용됐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아울러 노 대통령이 당내 인사를 행정부 수장에 기용한 데서는 총리를 통해 당정 간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또 하나의 의도가 읽혀진다. 대통령 정치특보와 정무수석이 폐지된 상태에서, 이 의원은 여권의 각종 개혁정책을 조율하고, 나아가서는 대통령과 당의 가교역까지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의원은 재야 민주화운동 출신으로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등을 역임하는 등 풍부한 행정 경험도 갖고 있다. 이 의원은 교육장관 재직 중 각종 교육 개혁을 밀어붙여 논란을 빚을 정도로 추진력이 강하다.
노 대통령은 직무 복귀 이후 '상생과 화합의 정치'와 함께 '지속적 개혁 추진'을 다짐해왔다. 노 대통령이 개혁성과 추진력이 강한 이 의원을 총리에 기용한 것은 화합 보다는 개혁 색체 강화에 더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부의 기강을 다잡겠다는 의지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총리의 기용으로 이 달 말 개각 때는 당초 예상했던 3개 부처 보다는 더 많은 부처 장관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기용되는 각료 가운데에는 40∼50대 인사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여권 관계자들은 "5∼6명 가량의 장관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교체 대상에 통일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외에 2∼3개 부처 장관이 추가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통일부와 복지부 장관으로 각각 내정됐던 우리당의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거취도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여당에서 이 의원 보다 정치적 비중이 더 높은 지도자로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전의장과 김 전 대표의 장관 기용 방침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변화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과 매우 가까우면서도 당내에서는 비당권파로 분류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당내의 세력 균형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李총리 지명자 일문일답
이해찬 총리지명자는 8일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오랜 정책위 의장 경험으로 경제를 보는 안목은 있다"며 "총리가 되면 경제 문제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지명자는 청와대의 총리 지명 발표가 나온 직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안정되고 힘 있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감은.
"내 능력으로는 하기 어려운 막중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상당히 두렵고 무거운 마음이다. 총선에서 국민들이 과반수 의석을 주었으니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도록 충심을 다하겠다."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대통령은 부패 청산과 정부 혁신, 민생안정 등 세 가지를 내각에서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잘 이끌도록 기대하는 것 같다. 참여 정부가 중요시하는 정책 과제를 안정되고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기대하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청문회 통과는 낙관하나.
"청문회 과정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답변하면 의원들이 판단할 것이다."
―교육계의 반발도 예상되는데.
"교육부 장관 시절 추진한 정책 가운데 교사들의 비판을 많이 받은 게 정년단축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면서 교육을 위해 불가피한 정책이었음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다."
―경제 문제에 대한 복안은.
"정부 여당으로서는 안보와 함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나는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책위의장을 오래 하면서 경제를 비교적 잘 이해하는 편이다. 경제 문제를 튼튼히 하는데 역점 둘 생각이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 이해찬은 누구
13대때 평민당 공천으로 원내에 첫 진출한 이후 내리 5선을 한 이해찬 총리 지명자는 김근태 의원과 함께 당내 재야 민주세력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개혁의 완급을 조절해 나가겠다"며 '안정과 경륜'을 내세워 선전했으나 천정배 대표에게 석패했다. 정가에서는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유연성을 갖춰 합리적 개혁론자로 불린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김근태 의원과 함께 투옥된 데 이어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모두 4년여의 옥고를 치렀고, 청년 시절은 민주화 투쟁에 헌신했다. 그가 국회 인준을 통과하면 최초의 '운동권 출신 총리'가 된다. 정계 입문 후에는 당 정책위의장만 3번을 거친 정책통,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많은 선거 전략통으로 인정받았다. 초선때인 88년 5공 청문회에서 광주 진압군의 살상 행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등 날카로운 질문으로 주목을 받았고 당시 노무현, 이상수 의원등과 '노동위 3인방'으로 맹활약해 일약 촉망받는 신인으로 부상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95년), 교육부장관(98년) 등 행정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교육부장관 시절의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여전하다. 전교조 합법화, 교원정년 단축 등 일련의 교육개혁을 진두지휘 하면서 교육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99년엔 일선 고교의 야간 자율학습과 월간 모의고사 등을 폐지시켰는데 이 때문에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심각하게 초래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83·84년생 학생들이 2002년도 수능시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자 이를 풍자한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선대위 기획본부장으로 참여정부 탄생에도 기여했고,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 창당기획단장을 맡으며 창당공신으로 활동했다. 총선이후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 대표에게 패하면서 당 핵심에서 멀어지는 듯 했으나 총리 후보로 되살아 난 셈이다. 경선 당시 "노심(盧心)이 이 의원에게 있다"는 말이 무성하기도 했다. 호불호가 분명해 다소 독선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처신이 원만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盧, 이해찬과 7일밤 독대
'김혁규 총리 카드'의 무산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한 차선은 5선의 이해찬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다.
8일 노 대통령과 신기남 의장 등 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회동에서는 "당내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일치를 봤다. 당 지도부가 "당과의 원만한 협조를 위해 가급적 당내 인사로 해달라"고 건의하자 노 대통령은 밝은 표정으로 이 의원의 이름을 꺼냈다고 한다. 앞서 노 대통령은 7일 저녁 이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총리 지명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김 의원이 총리직을 고사한 뒤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전윤철 감사원장, 우리당 한명숙 의원 등 숱한 인사들이 당과 언론에서 하마평에 오르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 벌어졌었다. 이 의원은 이때 거론되지 않다가 이날 만찬 직전에서야 청와대에서 임채정 의원과 함께 '제3의 인물'로 이름이 흘러나왔다. 두 명 모두 재야출신으로 개혁성향을 갖췄다. 또 차기 대권과는 거리가 있어 대권 주자들의 조기 경쟁을 막으려는 노 대통령의 구상과도 맞아 떨어졌다. 이 중 이 의원이 낙점된 것은 그의 행정 경험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충남 출신으로 서울에 지역구를 가진 이 의원의 발탁은 당 지도부가 호남인맥 중심으로 짜여졌다는 점도 감안된 결과로 해석된다.
한편 총리직을 고사한 김 의원이 'CEO형 총리'로 규정됐기에 경제관료 출신이 총리로 지명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영남 출신을 총리로 지명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발굴한 사람이 경영 감각을 갖춘 김 의원이었다"며 "그 구상이 깨진 뒤에는 굳이 CEO형이라는 컨셉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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