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흥행을 위해서라면" 자기복제 무섭지 않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자기복제 무섭지 않다?

입력
2004.06.08 00:00
0 0

올해 상반기 기대를 모았던 한국영화 2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류 열풍의 주인공 전지현이 여경 역을 맡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감독 곽재용·이하 여친소), 자서전 대필 작가와 조폭이라는 이색 캐릭터가 출연하는 '나두야 간다'(감독 정연원). 그러나 두 영화는 '배우와 감독과 캐릭터의 자기복제'라는 충격만 안겼다. 감정과 흥행코드의 과잉 속에 두 영화는 말한다. "한국 상업영화의 현 주소는 바로 우리"라고.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여친소'는 기대작의 거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홍콩 에드코필름의 제작비 30억원 전액 투자, 한국·홍콩·대만 동시 개봉(3일), 한국영화 최초의 서울 야경 항공촬영…. 무엇보다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으로 아시아에 한류열풍을 불러 일으킨 두 주역 전지현과 곽재용 감독이 다시 만났으니 국제 바이어들까지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의 자기복제에 다름 아니다. 열혈 여경 경진(전지현)과 순진남 명우(장혁)의 찡한 러브 스토리는 쉽게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를 정확히 재현했고, 곽재용 감독은 '엽기녀' 전지현의 곱디 고운 이미지에 전적으로 기댔다. '엽기녀'가 경찰 제복을 입고 상대역이 차태현에서 장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하철에서 걸쭉하게 구토를 하던 엽기녀. '여친소'에서는 현행범을 때밀이 수건으로 결박하며 '엽기 검거'에 나선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싸돌아 다니는 고등학생에게는 "유흥업소 돌아다니면, 죽여버릴거야."

게다가 예전 홍콩 누아르의 비장감 넘치는 형사 흉내까지 낸다. 지하 주차장 차량 뒤로 뒹굴며 총 쏘아대기, 자동차 폭파 신을 배경으로 범인을 한발로 누른 채 긴 머리 휘날리기…. 성냥개비만 안 물었지 '여자 주윤발'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훈훈한 감동을 안겼던 감독의 재능도 안타깝다. 카메라는 오로지 전지현만 따라다닌다. 가까이서 찍기, 빙 돌아가며 찍기. 여기에 새끼손가락 걸기에 얽힌 사연에 대한 극중극 장면은 여지없이 '엽기적인 그녀'다. 관객을 위해 밝힐 수는 없지만, 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는 이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에 전적으로 기댔다는 명확한 증거다.

영화는 그러면서 얄팍한 흥행 코드로 관객의 누선을 자극하려 애쓴다. 일찍 죽은 장혁이 전지현에게 한 말, "내가 없을 때 바람이 불면 그게 나인 줄 알아"라는 대사가 수 차례 반복되고, 이에 맞춰 예전에 장혁이 접어준 종이 비행기는 도심을 날아 다닌다. 두 연인은 "우리 같은 인연이 또 있을까?"라며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교환하고, 소나기가 퍼붓는 날 조그만 칵테일 우산을 들고 물장난을 친다.

무엇을 위한 자기복제이고 상황 설정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엽기적인 그녀'를 본 수많은 홍콩, 대만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기, 그래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가 정답이다. 15세 관람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나두야 간다

정연원 감독의 데뷔작 '나두야 간다'는 '사투리와 욕설에 기대지 않은 웰 메이드 코미디'를 지향한다. 그런데 소재는 조폭 코미디이다. 아이러니다.

세상에 욕 안하고 사투리 한두 마디 지껄이지 않는 조직 폭력배가 있나. '넘버3' '조폭 마누라'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등 조폭 코미디에서 익히 본 모습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선입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도 예외가 아니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으로 얼룩진 영상의 버라이어티 쇼다. 웰 메이드가 흉내내기라는 뜻은 아닐 텐데.

우선 자기 복제를 거듭한 인물 설정이 그렇다. 정준호가 연기한 3류 소설가 이동화는 돈벌이하는 아내 앞에서 큰 소리 한 번 못 쳐보고 구멍가게 주인에게 매맞는 한심한 인물. 그런 그가 조폭 두목의 자서전 대필을 맡으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듯 조폭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린다. 영락없는 '가문의 영광'의 벤처 사업가 대서다.

잔뜩 목에 힘을 주고, 활배근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팔을 벌리고 걷는 조폭 두목 윤만철을 연기한 손창민도 마찬가지. '정글쥬스' '맹부삼천지교'에서 그가 연기한 조폭 캐릭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러니 두 사람의 연기가 전작보다 나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나.

"카프카는 어디 파냐"는 식의 밑천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폭들의 대화와, 머리를 연신 때리는 모습은 '두사부일체' 등에서 익히 봤던 모습이다. 조폭 조차 자서전을 펴낼 궁리를 할 만큼 학력 콤플렉스로 얼룩진 사회. 하지만 이를 조롱하는 설정조차 졸업장을 따기 위해 고등학교로 다시 찾아 든 '두사부일체'를 떠올린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넘버3'의 막가파, '목포는 항구다'의 가오리파로 계보를 이어온 3인조 양아치는 3인조 자해공갈단으로 바통을 이어 받았고, 상상 속에서 빗속 결투를 하는 동화와 붙잡힌 애인을 구하기 위해 반대파를 찾아 나선 만철은 '조폭 마누라'다. 교복을 입고 결투하는 장면은 크롬 필터를 사용한 듯한 색조까지 '친구'를 닮았다.

설령 감독은 기시감을 부정할지 몰라도 관객의 망막에 끊임없이 다른 영상이 겹쳐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흥행에 목숨 건 제작사의 입장이나, 화려하게 테이프를 끊고 싶은 감독의 입장도 십분 이해가 가지만 웰 메이드가 못되더라도, 차라리 치졸하더라도 신인 감독의 참신함을 느낄 수 있는 독창성이 아쉽다. 좋았던 기억은 한가지. 삽입곡으로 쓰인 1980년대 가요 이재민의 '골목길'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15세 관람가. 25일 개봉.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