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것은 3월12일 이 곳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87일 만이었다. 그를 맞은 의원들의 박수 소리는 여당 의석수가 늘어난 만큼만 커졌다. 야당 의원들은 여전히 냉담했다.노 대통령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여야 의원들은 기립해 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해봉 정형근 이방호 박혁규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은 과거 국회 연설 때와 마찬 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조심스러운 듯 이전과 같은 즉흥 발언 없이 준비된 원고만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연설 도중 우리당 의원들은 13차례 박수를 보냈지만 야당 의원들은 냉담했다.
노 대통령이 연설에서 "저에게는 지난 1년 내내 경제였다"고 말한 순간, 박계동 의원 등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크게 웃기도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연설 초입에 "우리 헌정사에서 4·19 혁명 이후 5대 국회, 6월 항쟁 뒤의 13대 국회를 국민의 국회라 할 수 있다" "17대 총선에서는 봉기나 헌정 중단 없이 민의에 의한 국회를 건설했다"고 말하자 일부 한나라당 의석이 술렁거렸다. 노 대통령과 각 당 대표들은 개원식 후 국회의장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상생정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각자 입장에 따라 볼멘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야당이 합의해 주기 어려운 개혁만 들고 나온다"고 비판했고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세 차례나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는데 모두 거절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소수당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만 나오고 다수당에 대해서는 대접이 하나도 없다"는 우스개로 예봉을 꺾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날 때는 선물교환이 있어야 한다"면서 "민노당이 의석도 있으니 선물을 준비해 달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또 "기회만 주면 국회에 자주 와서 야당 의원들을 만나겠다"며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한 "盧대통령 현실인식 안이"
한나라당은 7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에 대해 "안이한 인식과 현실감 결여로 실망스러웠다"고 평가절하 했다.
특히 상당수 의원은 연설 도중 쏟아진 11번의 박수에 대해 "'박수부대'를 동원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며 노 대통령의 정치·경제분야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17대 총선을 '시민혁명'이라고 높이 평가했지만 대통령에 대한 '자기혁명'은 물론 개혁과 변화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이어 "국민은 경제위기를 절감하는 데 대통령은 아니라고 말했다"며 "경제혼란을 부추기고 신뢰를 주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제전문가인 임태희 의원은 "작금의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은 비전과 미래에 대한 불확신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의 경제인식은 여전히 정치적 목적에 따른 편가르기 식"이라고 비난했다. 맹형규 의원은 "탄핵정국 때 근신하고 달라지기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소장 개혁파인 원희룡 의원도 "대다수 국민의 생각과 번지수와 틀렸다"고 꼬집었다.
민주노동당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노당 김종철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 대통령의 경제인식은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서민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17대 총선이 4·19혁명과 87년 6월 항쟁에 비견된다는 언급에 대해 "부적절한 자화자찬"이라며 "대통령이 형식적으로나마 상생정치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경제문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환영한다"면서 "대통령이 경제문제 챙기기에 적극 나선다면 여야를 초월해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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