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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고무신이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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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고무신이 있는 자리

입력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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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운동화를 샀다. 신발을 사며 문득 든 생각이 신발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맨발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 발이 언제 맨땅을 밟아 보았나, 생각해보니 그게 언제일지 모를 만큼 근래엔 그랬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도시에서는 우선 맨땅을 보자 해도 멀리 나가야 한다. 설령 나간다 해도 바라보기만 할 뿐, 맨발로 땅을 밟고 서 있기가 쉽지 않다. 일삼아 그렇게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풀밭 위에 양말을 벗고 서 있기도 왠지 께름칙하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은 더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주변 어디에도 없다.

내 몸이 그리워하는 맨땅, 맨흙의 추억은 고향의 논밭이 아닌가 싶다. 논이야 물이 있는 곳이니 그곳에서 일을 하자면 으레 신발을 벗어야 하지만, 밭일 역시 맨발이 편하다. 맨발로 밟고 선 흙의 감촉은 부드럽고 편해도, 신발 속으로 들어온 흙은 영 불편하고 짜증스럽다. 그래서 그때그때 벗어서 털기 편한 고무신을 신는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르는 몇 개의 고무신이 있는데 할아버지와 내 것은 고향집 댓돌 위에 놓여 있고, 젊은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것은 건너골 감자밭 가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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