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58) 삼성 테스코 사장의 명함에는 직함 밑에 한가지 타이틀이 더 있다. 도시공학 박사다. 홈 플러스라는 유통업체를 운영하면서 도시공학 박사라니 의외다 싶은데 박사를 따고 사장이 된 게 아니라 사장을 하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니 과연 명함에 새길 만 하다. 이 사장도 보통 의지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홍구(59)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와의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이 사장이 여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삼성물산의 개발사업본부장 시절. 서울 동대문 부근의 도심지하공간 개발프로젝트를 놓고 다른 기업들과 경쟁할 때였다. 심사위원 중 여 교수가 몹시 깐깐하다고 했다. 직접 얼굴을 대한 건 93년 삼성그룹 SOC(사회간접자본)추진 태스크포스팀장을 맡고 나서다. 이런 저런 조언을 구하기 위해 여 교수를 만났다. "막상 만나보니 두루뭉실하고 푸근한 인상이었지요. 그런데 조금 얘기해보니 섬세하고 예리하고 치밀한 사람입디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다 스케일을 중시하는 스타일이 비슷했다. 통상적인 교수와는 달리 여 교수는 추진력이 있어 금세 통할 수 있었다. 예술에 대한 취미도 공통점이었다.
공부 얘기는 여 교수가 먼저 꺼냈다. "개발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학문적 배경이 없으면 안된다"며 석사를 권했다. 이 사장은 망설였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 않았지만 실무자도 아닌데 시간을 쪼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여 교수는 집요했다.
결국 이 사장은 밀리다시피 96년 한양대 도시계획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지도 교수는 당연히 여 교수였지만 일체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학위를 따기 위해 영어에 종합시험까지 봐야 했으니까요. 경상도 말로 쭈글시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두 사람의 관계도 조금 달라졌다. "학교에 가니 여 교수가 선생님 같아 보이더군요. 말도 함부로 못하겠던데요. 하하." 하지만 이 사장도 보통 학생은 아니었다. 실무를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여 교수의 부탁으로 특강도 해주었다. 2년 만에 무사히 석사모를 썼다. 이 사장은 이 정도면 됐겠지, 했다.
그러나 여 교수는 그렇지 않았다. 내친 김에 박사까지 해보라는 것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공부해야 한다며 은근히 겁을 주기도 했다. 박사공부는 몇 년 더 있다 할 요량이었던 이 사장은 다시 한번 설득 당했다. 여 교수를 지도교수로 도시공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석사는 박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비를 털어 자료조사해서 잡아간 논문 초안을 여 교수는 "이론적 배경이 부족하다"며 몇 번씩 바꿔 버리곤 했다. 97년 삼성물산 대표이사(유통부문), 99년부터 삼성 테스코 사장을 맡아 낮에는 눈 코 뜰 사이도 없었다. 밤에는 책을 읽느라 새벽 2,3시 전에 잠자리에 든 날이 거의 없었다. 결국 올 2월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를 할 때는 몰랐지만, 막상 하고 나니 전보다 더 할 일이 많아졌다. 모교의 겸임교수로 출강하는 것은 물론이고 홈 플러스의 외관이나 주차장 하나를 설계할 때도 도시경관과 교통흐름을 먼저 염두에 두게 되었다. 도시계획, 세계적 인프라를 갖춘 벤처단지 건설, 아시아 허브 건설, 통일 이후를 대비한 국토 구상 등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특히 통일 후 국토개발은 여 교수와 꼭 같이 해보고 싶은 필생의 프로젝트다. "내가 만일 도시공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매달리지 않았을 일들이지요. 여 교수가 제게 이론을 가르쳐 주었으니 이제 그 이론을 제 실무 경험에 더해 한국의 도시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좋아하는 미술작품을 함께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소박한 바람은 그 다음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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