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로 건축된 대학 지하에서 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온 선배를 우연히 만났다. 선배는 "여기가 옛날 운동장 자리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크럼을 짜던 1970, 80년대의 대운동장은 공원처럼 변했고, 지하엔 열람실과 다양한 편의시설, 더 지하엔 주차장, 열람실 옆 커피점에서 '우아하게'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 상전벽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선배의 입에서 잇달아 흘러나왔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나는 모 대기업의 이름이 붙은 신축 경영관을 관람해 보라고 했다.산보 삼아 요즘 대학에 가 보시라. 대학은 지금 공사중. 웬만한 서울의 대학들은 군비경쟁이라도 하듯, 캠퍼스 리모델링 경쟁을 하고 있다. 부족한 연구·교육 공간의 확보를 위해, 아름다운 캠퍼스 만들기를 통한 대학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달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해서 집을 신축하거나 개조한다는 데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의 적정성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근래 학회 일로 몇몇 대학의 신축 건물에 들어가 보고는 적잖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대기업이나 호텔 수준의 시설은 딱딱한 나무의자에 익숙한 내 인문학적 엉덩이를 비웃는 듯했다. 굳이 대리석으로 치장하지 않으면, 고급스런 안락의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강의실이나 세미나실을 더 만들 수도 있을 텐데. 그 비용으로 교수를 더 채용해 학생 대 교수 비율을 줄이면 좀더 질 높은 교육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애꿎은 등록금은 자꾸 올라가는데…. 안락한 가죽의자에 불편한 심정으로 앉아 펼쳐본 잡상이다.
화려한 교육환경 때문에 학문이나 교육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말을 나는 별로 들어본 일이 없다. 지금 공사중인 대학에 정말 필요한 것은 필요의 적정성을 고려하는 사유의 리모델링이 아닐까?
조현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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