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제 상황이 위기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많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불황이면 주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다. 밤 늦게 술집에서 나왔는데도 쉽게 빈 택시를 탈 수 있느냐, 여자들의 치마 길이가 길어졌느냐 등을 기준으로 경기를 판단하고는 한다. 복잡한 여러 통계를 해석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 쉽고 정확할 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체감 경기'라는 것이다.■ 동전 발행도 경기를 짐작하는데 하나의 지표가 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 1·4분기 주화 순 발행액이 19억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억원에 이어 매우 부진했다고 밝혔다. 경기가 어려움에 따라 서민들이 그냥 방치했던 동전을 꺼내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기가 가라앉기 전인 2002년 1·4분기에는 주화 순 발행액이 192억원에 달했다. 한은이 전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동전 발행 잔액과 민간 소비, 소비자 물가 증가율을 살핀 결과 민간 소비가 1%포인트 증가하면 동전 발행 잔액은 0.475%포인트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물가의 경우 1%포인트 오르면 동전 발행 잔액은 0.547%포인트 증가한다.
■ 얼마 전에는 인터넷 경매에서 포장마차가 없어서 못 파는 정도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제는 1톤 트럭 판매가 다른 차종에 비해 크게 줄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1톤 트럭 판매량은 3만18대로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했다. 이 트럭은 자동차 시장에서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서민 체감경기 역할을 한다. 최근 1톤 트럭 판매가 급감한 것은 '나 홀로 창업'조차 어려울 정도로 경기가 나쁜 것은 아니냐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 경기를 판단하는 요인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여성들의 화장이 짙어지는가 아닌가,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의 길이, 신사복 판매 경향 등이 그런 것들이다. 최근 일본의 한 연구소는 광고 모델에 젊은 여성 탤런트가 많아지고 배경 음악도 빠르고 경쾌해진 것을 두고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굳이 이름 붙인다면 '길거리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나 경제 정책 담당자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경제 위기 진위를 따지기 전에 한번 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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