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 강의실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신문이 뉴욕타임스다. 바닥에 흐르는 강한 미국중심주의에도 불구하고, 언론학자들은 이 신문을 권위지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달 18일자 이 신문 1면 머릿기사를 보며, '세계적 권위지'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다시 떠올려 본다. 동성애자에 관한 기사다.'동성 부부 수백명 매사추세츠 주에서 결혼'이라는 제목 밑에 사진도 큼지막하다. 40대로 보이는 두 남자가 활짝 웃으며 결혼반지 낀 손을 보여주고, 시청 여직원도 엄지를 들어 축하를 보내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는 결혼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미국의 첫번째 주가 된 것이다. 기사는 다른 면으로 길게 이어지며 다채로운 반응과 파급효과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의 결혼인정은 관습, 종교 등 고려돼야 할 부분이 많은 미묘한 주제다. 그러나 또한 당사자가 아니고는 이 인간의 수수께끼와 고뇌를 이해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소수자의 인권을 편견 없이 객관화하는 신문의 자세다.
우리 언론이 주요 의제를 지성적이고 균형감 있게 부각시키는가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진중해야 마땅할 주제를, 정략에 따라 고식적이고 가볍게 스치듯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이 문득 고개를 드는 것이다. 권력관계 같은 선정성에 의제를 과잉집중시킴으로써 사회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함께 고뇌해야 할 대표적 사안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다. 한국일보 3일자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가 실려 있다. 결과는 반대(91%)가 찬성(9%)을 압도했다. 그러나 네티즌의 글은 이와 달랐다. 찬반이 비슷한 수준이었고 찬성하는 이들은 대부분 대체복무를 지지했다. 즉각적 반응과 사유를 거친 반응이 이처럼 크게 다르다. 이 문제가 표면화한 것도 진전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좀더 깊은 이성적 사유와 양식 있는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신념과 사상의 자유는 모든 자유의 발원지다. '양심'으로 표현된 신념의 자유는 의사표시 단계를 거쳐, 행위로 나아간다. 행위에 이르러서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원칙에 따라 법적 통제를 받는 것이 민주사회의 보편적 틀이다. 최근 서울 남부지법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첫 무죄선고를 내려, '자유의 발원지'에서 횃불을 들었다. 모두 이 사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 앞서 언론은 개인의 신념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스스로 합리적 공론화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 출신의 학자 박노자 씨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1920∼30년대에 유럽 민주국가에서 보편화했다. 1차 대전의 참상이 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이 앞장섰고, 프랑스 벨기에 동독 스위스 등이 뒤를 이었다. 유럽적 민주주의와 병역거부권 인정은 동의어처럼 되었다. 현재 징집되는 젊은이 중 10∼15%가 16개월 정도의 대체복무를 택하고 있다. 이는 정상 복무기간의 두 배에 가깝다. 모병제를 실시하는 미국과 일본은 아예 이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최근 인권단체들이 대만 대체복무제도를 돌아본 후 보고서를 냈으나 잘 보도되지 않고 있다. 대만 제도는 4주의 기초군사훈련 대신, 4개월 간 추가근무를 하게 돼 있다. 대체복무자는 사격훈련 대신 긴급구조과정, 체력훈련 등을 교육받으므로 병역기피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익근무요원과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20여만 명이 이미 대체복무를 해왔다. 헌재의 결정도 기다려지지만 심도 있는 공론화가 선행되고, 마침내 청년들의 종교적·평화적 신념이 상처받지 않도록 합리적 법령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역사는 소수자의 인권적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발전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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