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봉한 코엔 형제 감독의 '레이디킬러'는 얼치기 강도 5명의 카지노 금고털이를 다룬 영화다. 강도들은 만만하게 본 시골 할머니에게 쫓기다 모조리 죽는다. 돌에 맞아 죽고,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고…. 18일 개봉하는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재현했다. 영국 공수부대원이 시민권을 주장하며 평화행진을 하던 아일랜드인 1만명에게 발포, 13명이 숨진 사건이다.여기서 부끄러운 고백 하나. '레이디킬러'에서 톰 행크스가 다리 난간의 돌에 맞아 추락사할 때, 몹시 웃었다. 인간의 죽음마저 조롱하고팠던 영화에 휘말린 탓이지만, 사람이 죽어나갈 때 터져버린 어이없는 웃음의 정체는 뭔가. '블러디…'에서는 더 심했다. 셀 수 없이 죽어나간 우리의 1980년 광주가 너무 셌던 탓일까. 사망자 13명이 너무 적게 느껴졌다.
맞다. 최소한 기자에게 사람 생명의 가치는 한없이 가벼워져 있었고 100명 이상은 돼야 뉴스가 된다는 식으로 숫자에 대한 집착은 높아져 있었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각목으로 수많은 깡패들을 때려 눕힐 때 환호했고, '사마리아'에서 아버지(이얼)가 딸과 원조교제한 남자를 때려 죽일 때 속이 다 시원했다.
영화만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다. 고향 소식을 전하는 TV 아침 프로그램에서, 20대 여성 리포터가 산 낙지를 보며 "어머, 소금기름에다 콕 찍어 먹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할 때 입에서는 군침이 돌았다. 낚시바늘에 걸린 감성돔이 애처롭게 바늘털이를 할 때 손에는 전율이 흘렀다. 갓 잡혀 바둥대는 낙지와 감성돔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감칠 맛 나는 먹을거리와 손맛거리에 불과했다.
지난달 칸영화제에서 '올드보이'를 보고 나왔을 때 네덜란드 여기자가 물었다.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요?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지 않나요?" 그때 기자의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순진하긴…. 이 정도 갖고 뭘." 영화가 사람을 무참히 때리고 죽일 때, TV가 피 흘리는 생명체에서 군침을 흘릴 때, 왜 우리는 경악하지 않는가.
김관명 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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