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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오만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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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오만의 결과

입력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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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역시 민심은 무서운 것이다. 불과 50일 전에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전에 6·5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다.물론 재보궐 선거라는 것이 전국적인 전체 유권자의 민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 유권자들은 역사적으로 최근 승리한 세력을 견제하는 견제심리를 발동해 왔다는 점, 재보궐 선거가 열린우리당의 지지 기반인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은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자기도취에 빠져 뼈를 깎는 자기개혁을 게을리한다면 또 한번 무덤을 파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다른 재보궐 선거와 달리 전국적으로 치러진 일종의 약식 전국선거라는 점에서 다소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선거 결과도 행정수도 이전 공약 후 새로운 텃밭으로 부상하고 있는 충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참패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번 선거 결과는 외형적으로는 충격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당연한 결과이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총선 승리 이후 50일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기각과 함께 정무에 복귀한 뒤 보여준 행적을 살펴보면 이번 참패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탄핵으로 위기에 처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국민들은 촛불시위와 투표를 통해 살려줬다. 그러나 이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보여준 것은 마치 자기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착각과 이 같은 착각에 기초한 오만이었다.

총선 승리 후 노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열린우리당에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차기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를 당으로부터 격리하여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중립적인 세력들도 반대하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차기 총리에 임명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나섰다. 이에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확산되자 문희상 대통령 정치특보가 당 지도부를 협박하고 나섰다. 다시 반발이 커지자 이번에는 당에 간섭을 하지 않을 테니 당도 청와대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몽니를 부리고 나섰다.

민생문제만 해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이 지지해준 서민들에게 제일 먼저 선사한 것은 총선 과정에서 약속한 주택 원가 공개 공약을 백지화한다는 발표였다. 뿐만 아니라 비교섭단체인 민주노동당 등에 국회부의장과 상임위원장 1석을 배정하자는 한나라당에 맞서 오히려 비교섭단체에는 자리를 배정할 수 없다는 패권주의적 태도로 원 구성을 지연시켰다. 그 결과 급기야 국회를 개원 첫날부터 12시간이나 공전시키는 오만을 저질렀다. 상생의 정치, 일하는 국회치고는 기이한 출발이다.

수구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노 대통령의 연세대 강연만 해도 그렇다. 물론 그 강연이 그동안 갇혀 있던 노 대통령이 젊은 대학생들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필요한 자극적인 언술로 분란만 일으켰지 개혁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 같은 강연을 왜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이번 선거가 총선 50일 만에 치러진 것이다. 만일 재보궐 선거가 1년 뒤 치러졌다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그만큼 오랜 기간 자만에 빠져 국정을 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50일 만에 재보궐 선거를 치른 덕에 민심의 경고에 의해 그동안의 오만을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자기정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노 대통령이 몰릴수록 고집이 강해지는 옛 스타일을 고수해 반성은커녕 더욱 오기를 부려 강경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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