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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의 만화로 세상보기] 윤태호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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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의 만화로 세상보기] 윤태호 '로망스'

입력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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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들의 눈에는 가끔 경이로울 지경이다. 내일 모레면 칠순을 맞는 아버지와 육순의 어머니. 요즘 세상에 노인이라 칭하긴 아까운 연세지만 주말마다 어깨 나란히 산을 찾고 동네 마트를 함께 다니며 때마다 산수 좋은 곳 찾아 나들이하고 휴대폰 번호를 커플로 맞춰 사는 모습이 예쁘면서도 닭살이 돋을 정도다. 40년 가까이 더불어 살아왔는데도 내외의 정은 여전하단 말인가?아들은 아무래도 노년의 사랑이란 젊은이들의 열정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여느 청춘과 마찬가지로 애틋한 로맨스의 주인공들이었다. 시골에서 상경, 고학생으로 만나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자취방으로 찾아온 소녀의 신발에 묻은 진흙을 옷깃으로 닦아준 청년의 정성이 이들의 사랑을 열매 맺게 했단다. 숱한 일상의 거친 고비를 함께 지나고 나서 사랑은 더욱 단단해 졌단다. 사연을 듣고 나서야 아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시린 사랑을 겪은 사람에게 사랑의 마력은 매일 새로운 유혹이며 그것은 육신보다 영혼이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에게 사랑의 유혹에 반응하는 것은, 밥 먹듯 일상처럼 다가오는 일일 것이다.

윤태호의 '로망스'(애니북스)는 내가 부모님의 사랑과 노년의 열정을 이해하게 한 만화이다. 작가가 자신의 장인, 장모를 모델 삼아 맛깔스러운 해학에 절절하게 담아낸 황혼의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친구들 앞에서 여전한 자신의 정력을 과장해 허풍 떠는 콤플렉스가 있고, 콤플렉스 때문에 주눅들면서도 더욱 정겨운 노마님을 향한 로맨스가 있다.

아들 부부가 부부싸움 조짐을 보이면 거짓 부부싸움을 먼저 전개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노련미도 아끼지 않는다. 황혼의 사랑 방정식은 나무가 계절에 맞는 단풍으로 갈아입는 듯한 황혼이어서 더욱 아름답고 내밀한 대화법으로 시작된다.

어느 술자리에서 만화가 선생님 몇 분과 중년의 사랑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야기는 '시마과장' '황혼유성군' '하늘을 나는 물고기' 같은 중년의 사랑을 다룬 만화로 시작됐지만 이내 중년의 사랑 그 자체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탐미적이 된다는 분, 나이 쉰이 돼서야 사랑이 무언지 조금 알 것 같다는 분, 나이 마흔 다섯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다는 분과 중년의 사랑이 더욱 설레고 뜨겁다는 분까지…

사랑은 젊은 열정의 전유물이 아니며 어쩌면 인생의 깊이를 맛 본 사랑이야말로 정직한 사랑의 참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은 지난 주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작은 항의를 한 부모님께 불초한 아들이 드리는 변명이기도 하다.

/박군·만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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