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직원 오영진(34)씨는 2000년부터 1년 반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 경수로 건설 기술자로 파견된 것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했을까.만화 그리기와 직장 일을 병행해온 오씨가 북한 체류 경험을 모아 '남쪽 손님'을 냈다. 북한 주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들어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북한 전문서와 이념서 또는 평양, 금강산을 들른 유명 인사의 여행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문화와 언어 차이에서 오는 황당하면서도 우스운 에피소드로부터,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현실적 한계까지 솔직하게 그렸다.
오씨는 만화에서 자신을 오 대리로 그린다. 오 대리는 베이징에서 평양행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면서 북한을 처음으로 실감한다. 등받이 조절 레버가 없고 유리창에는 금이 가 있다. 정비가 늦어져 이륙도 지연됐다. 기다리던 기내식. 옆 승객까지는 제공됐으나 오 대리 앞에서 동이 났다. 옆 좌석 북한 승객이 "조국을 찾은 손님"이라며 오 대리에게 기내식을 주고 자신은 카스텔라를 받았다.
비포장 험한 길을 달려 공사 현장인 신포에 닿은 오대리 일행.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남북의 차이였다.
한번은 오 대리가 차를 몰고 현장 감독을 나갔다. 북한 근로자가 찻길로 걸어가길래 경음기를 울렸다. 그랬더니 그가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오 대리는 "길을 비켜달라는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북한 근로자가 하나, 둘 모여 집단으로 항의했다.
오 대리가 신속하게 피했지만 잠시 뒤 안전 책임자까지 대동한 채 찾아왔다. 오 대리가 "별 것 아닌 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고 말하자 북한 근로자가 "이 자리에서 '총폭탄'이 되겠다"고 분개했다. 가까스로 악수하고 화해했지만 오 대리는 어이가 없었다.
하루는 오 대리가 공사 현장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여성 접대원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물었다. 고향이 어디냐?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군 줄 아느냐? 접대원은 주저하지 않고 척척 대답했다. 그러나 오 대리가 "김정일 위원장은 자식이 몇 명이나 돼?"라고 묻자 답변이 달라졌다. "선생님!! 지금 남측에선 '알려고 하지마! 다쳐'라는 말이 유행한다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 대리 일행은 차이를 이해하고 따뜻한 인정을 느낀다. 어느날 다리 공사를 하다 잠시 쉬던 도중, 옆에 놓인 광주리를 발견했다. 따뜻한 감자와 옥수수가 있었다.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북한 주민이 슬쩍 놓은 것이었다. 일행은 북한 주민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고 감자와 옥수수를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경제적 궁핍, 남북의 불합리한 협정 등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사과궤짝 같이 얼기설기 엮은 관에 어머니 시신을 뉘고 오열하는 남자,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솔잎을 긁는 할머니와 손자, 아이 업고 양 손에 짐을 든 채 힘겹게 걸어가는 북한 여성을 보고도 남북 의정서 때문에 차에 태워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작가는 북한을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그리기 위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않았다.
대신 겪은 일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찡하게 그렸을 뿐이다. 작가는 현지 경험을 만화 스토리로 만든 뒤 휴가 때 양말 안쪽에 넣고 심사대를 통과, 남한으로 가져와 만화로 만들었다. 2권 '빗장열기'도 곧 발간된다. 길찾기 발행 8,800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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