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에 '여대야소' 구도로 재편된 17대 국회의 출범은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큰 변화를 예고한다.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구조인데다 우리당 스스로 정치, 경제, 사회, 통일, 언론, 사법 등 각 분야에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변화에 당의 사활을 걸고 있어 개혁이 17대 국회를 관통하는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이긴 하지만 진보세력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입성 또한 개혁 추동력을 높인다.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도 "17대 국회는 그 구성으로 볼 때 어느 때보다 개혁의 명분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 기존의 터부를 무너뜨리려고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의 시도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교수는 또 "그 동안 상당히 견고했던 우리사회 기성체제 모델과는 다른 탄력 있는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선순위는 정치개혁
깨끗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데는 여야의 이견이 없다. 정치분야 개혁은 사회적 비용이나 국민 피로도 별로 뒤따르지 않는다. 가시적 효과가 가장 즉각적이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파급효과도 큰 게 정치개혁이기도 하다. 17대 국회의 개혁이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대표적 정치개혁 법안은 우리당이 추진하는 '국민소환법'과 '불법정치자금국고환수법'이다. 부패나 비리 등에 연루된 의원을 임기 중에라도 국민이 일정한 요건을 갖춰 소환해 해직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소환법은 한나라당도 오·남용 방지책 마련을 전제로 찬성이다. 이를 위해선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장애물이나 여야의 의지와 여론의 뒷받침이 강력해 주목할 만 하다.
불법정치자금을 국고에 환수토록 하고 국가의 가압류를 의무화 하는 불법정치자금국고환수법은 우리당이 처리 1호 법안으로 공언한 것이다. 한나라당도 찬성하고 있어 제정이 유력하며, 도입될 경우 우리 정치의 '검은 돈' 문화를 뿌리뽑는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권을 누렸던 의원의 지위변화도 예상된다. 여야가 국회법을 개정, 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한하자는 데 공감하고 있어 '헌법상 권리'라는 논란과 국회의 독립성 보장 등이 선결된다면 현실화할 수 있다.
경제, 사회시스템도 사정권
경제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재벌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우리당은 공정거래위의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을 3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폭 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되지만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파장은 상당할 전망이다.
여야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선거권 연령 인하(20세에서 19세로)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도 사회 분위기를 바꿀 법안들이다. 이미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호주제 폐지 문제는 17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쟁점이다.
논란의 핵, 국가보안법과 정기간행물법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대북 인식의 변화를 몰고 올 중요 현안이다. 사안이 민감한 만큼 여야간 이견이 적지 않다.
존폐론이 핵심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우리당은 폐지론과 개정론이 병존하고 있지만 "대체입법을 통해서라도 폐지해야 한다"는 데 가깝다. 한나라당에는 "불고지죄 등 악용 소지가 있는 조항은 개정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많은 가운데 개폐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때문에 우리당이 일방적으로 보안법을 손대기는 쉽지 않다.
언론개혁 과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당은 "정기간행물등록법 개정을 통해 언론개혁을 17대 국회에서 반드시 이뤄 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언론사주의 소유지분을 30%안팎으로 제한하고, 일부 언론사의 시장독과점 상황도 규제(1개사 20% 이내, 3개사 60% 이내 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사기업인 언론에 대한 소유지분 제한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위헌소지가 있다"며 부정적이다. 역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당의 강행 의지가 워낙 강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언론환경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우리당 홍재형 정책委의장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불법정치자금 국고환수 특별법, 통합 도산법,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 등이 17대 국회 우선 처리 대상"이라고 밝혔다.
홍 의장은 "여야간 합의가 가능하고, 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혁부터 추진하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홍 의장은 또 "국회 안에 국민연금제 보완과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국민연금제 개선작업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홍 의장은 "정치·언론·사법·교육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국회 개혁 특위 통한 상시 개원제·의원 특권 남용 방지 등 논의 대국민 법률 서비스 확대와 인권보호 등 사법 개혁 사립학교 재단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확보 등도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이다.
홍 의장은 특히 신문사 사주 소유지분 제한 등 일부 개혁 법안 내용에 대한 위헌 시비에 대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면서도 "정계와 사회 전반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시장 개혁 의지도 천명했다. "출자총액 제한제의 합리적 개선과 금융·보험사 의결권의 단계적 축소 등 공정거래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
홍 의장은 세부 입법 과제 추진을 위해 "과반 집권 여당의 지위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당-정-청은 국정 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관계"라면서 "당정 정책 협의를 강화하고 당-청 간 정례 정책협의회를 여는 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야당의 협조와 함께 "필요하면 시민 대표나 전문가 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라며 적극적 시민 참여도 주문했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한나라 이강두 정책委의장
"당 예산의 50%를 정책 개발과 실천에 아낌없이 쏟아 붓겠습니다."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7일 "21세기 선진정당의 길은 정책정당화"라며 "한나라당은 야당으로서 여당의 정책을 견제하는 기능에 그치지 않고 각종 정책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장은 "최근 분양원가 공개 약속 백지화 소동에서 드러났듯이 정부·여당의 정책이 즉흥적이고 일관성이 부족하기에 한나라당의 보완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장이 그리는 바람직한 국회상은 '여야가 몸싸움이 아닌 정책으로 대결하는 국회'다. 이를 위해 여야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정기적 회담을 갖고 주요 정책현안이 발생하는 즉시 여야 지도부가 수시로 만나는 체제를 구성하며 16대 때 정부정책 홍보 루트로 전락한 국무총리 및 4당 정책위의장 협의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17대 국회 최대 이슈로 여야간 입장차가 큰 국가보안법과 언론개혁법안 문제를 꼽았다. 그는 "국가보안법은 일부 문제 조항은 전향적 개정을 검토할 수는 있으나 전면적 폐지는 시기상조이고, 언론개혁은 방송개혁이 우선적으로 처리돼야 한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의장은 "국가보안법 등도 중요하지만 규제개혁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민생 살리기가 한나라당의 최우선 정책 과제"라며 "최근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국민연금과 공적자금비리 문제에 대해 각각 태스크포스팀과 조사특위를 구성키로 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한나라당은 모든 정책 문제를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