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씨름 선수로 이름을 날린 J(42·회사원)씨는 180㎝의 키에 몸무게 110㎏이 넘는 거구다. 앉은 자리에서 삼겹살 서너 근을 너끈히 먹어 치우던 선수 시절의 식습관을 고치지 못해 몸무게는 줄어들 줄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가슴이 죄는 듯 답답함과 체증 비슷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최근 지각을 한데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엘리베이터까지 고장나 12층까지 계단을 뛰어 오르던 J씨는 5층쯤 이르렀을 때 가슴을 움켜쥐며 주저앉고 말았다. 동료가 급히 그를 응급실로 옮겨 다행히 큰 변은 면했지만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심장에 혈액 공급을 원활히 해주는 동맥 확장술을 받았다. 지난 겨울 직장 건강검진 때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280㎎/㎗을 넘어서 치료권고를 받았는데도 증상이 없다며 이를 무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중년을 넘어서면 콜레스테롤, 혈압, 혈당 같은 단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거나 병원에서 초음파, CT(컴퓨터 단층촬영) 등 고가의 검진을 받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애써 검사를 해놓고 정작 자신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젠 일반인들도 혈압을 비롯해 콜레스테롤, 혈당, 비만, 간 등 건강의 지표가 되는 수치를 판독하는 방법을 알아둬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혈압, 최저 80, 최고 120 이하를 유지하라
혈압은 원활한 혈액순환을 위해 심장의 펌프질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심장이 혈액을 밀어낼 때의 압력인 수축기(최고) 혈압과 심장이 혈액을 밀어내기 직전 한껏 늘어난 확장기(최저) 혈압의 정상 범위는 120㎜Hg 미만/80㎜Hg 이상이다.
저혈압보다 고혈압이 문제인데, 최고 140㎜Hg 이상이나 최저 85㎜Hg 이상이면 혈관이 터지거나 막힐 확률이 높아진다. 이보다 약간 낮은 수치라 해도 안심은 금물. 정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혈관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고혈압에는 혈압 조절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약을 먹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더라도 의사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절대 끊어서는 안 되며 젓갈 등 짠 음식을 삼가고 혈액 속 나트륨량을 떨어뜨려 혈압을 조절해야 한다. 사포닌을 다량 포함한 콩을 먹는 것도 고혈압 개선에 도움이 된다.
혈당 수치 공복시 110, 식후 140 넘으면 위험
혈당 수치는 저녁 식사 후 10시간이 지나 아침 공복일 때 110㎎/㎗ 미만, 식후 2시간 후 140㎎/㎗ 미만이면 정상이다. 반면 공복일 때 120㎎/㎗ 이상, 식후 2시간 후 200㎎/㎗ 이상이면 당뇨병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혈당은 섭취물과 활동 정도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내분비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만큼 서너 차례 더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
당뇨병은 성인 실명(失明)의 주된 원인이자 뇌졸중, 심장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이런 극단의 상황을 막으려면 식사, 운동, 약물투여, 기분상태에 따라 하루에 4회 정도 혈당을 측정해 적정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식사 전과 식사 후 2시간 뒤에 각각 한번씩. 그리고 운동할 때에는 운동 전, 운동 중간, 운동 종료 2시간 뒤에 모두 혈당을 측정해야 한다. 운동 중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를 예방해야 하기 위해서다.
만약 운동 전 혈당치가 100㎎/㎗ 미만이면 우유 1잔을 마셔 혈당을 높인 뒤 운동을 시작하고, 250㎎/㎗ 이상이면 운동을 삼가야 한다. 운동 후 혈당이 낮아졌으면 사탕 등 당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다.
콜레스테롤 HDL은 60 이상, LDL은 150 이하로
혈액검사에서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은 높을수록,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은 낮을수록 좋다. HDL은 60㎎/㎗ 이상, LDL은 150㎎/㎗ 이하를 유지해야 하며 그 범위를 벗어나면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 하루 30분 정도의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LDL을 감소시키고, HDL을 증가시켜 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야채 및 과일, 정제되지 않은 곡물, 올리브 기름, 카놀라 기름, 등 푸른 생선 등은 HDL을 높이는 음식이다. 반면 동물의 내장, 간 및 알, 붉은 살코기 종류는 LDL을 높이므로 피한다.
체지방비율, 체질량 지수 줄여야
체중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인 체지방 비율은 비만 여부를 가장 정확히 알려주는 지표로, 남성은 10∼20%, 여성은 20∼30%면 정상이고 남성의 경우 20% 이상, 여성의 경우 30% 이상이면 비만이다.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 수치도 25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송윤미 교수는 체질량지수가 30 이상인 뚱뚱한 사람의 경우 사망률이 정상인의 1.3배, 체질량 지수 18 이하 깡마른 사람의 경우 1.6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나이를 비롯한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같은 해 죽을 확률이 정상인보다 뚱뚱한 경우 30%, 깡마른 경우 60%나 높다는 뜻이다.
허리둘레의 경우 남성은 90㎝(35인치), 여성은 80㎝(31인치) 이상이면 복부비만에 해당한다.
간 수치는 30보다 낮게
간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이 간 효소검사(AST, ALT/일명 GOT, GPT)다. AST, ALT는 간세포 내에 있는 효소로, 간세포가 망가지면 혈액 속으로 흘러나온다. 따라서 혈액 속에 이 두 효소의 수치가 높을수록 간세포가 많이 손상되었다는 뜻이며 30IU/L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보통 간 수치의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간 수치는 병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와 무관할 때도 많다. 이 수치는 현재 세포가 파괴되고 있는지 여부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가 이미 모두 파괴돼 간경변증이나 간암이 돼도 간 수치는 정상이다.
간 수치를 낮추기 위해서는 음주를 삼가고 휴식을 취하며 영양상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소식(小食)을 하고 표고버섯과 대추, 양송이를 함께 끓인 물을 꾸준히 마시면 B형 간염 보균자가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최윤호 교수, 영동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김똘미 교수, 강남베스트클리닉 이승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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