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년 전과 현재의 대학 학과를 살펴보면 새롭게 접하는 이름이 많다. 이중 일부 학과는 없어지거나 다른 과에 통폐합됐지만, 이름을 바꾼 학과도 상당수다. 도서관학과는 문헌정보학과로, 전산학과가 컴퓨터공학과가 된 지는 벌써 오래다. 최근엔 원자력공학과가 양자공학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새 이름은 아무래도 근사하고, 학과의 위엄을 높여주었으며, 입시에서 확연히 오른 커트라인으로 진가를 확인해 주었다.이런 일이 요즘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대한소아과학회는 "학회 내부와 의학회의 의견수렴을 거쳐 소아과라는 이름을 소아청소년과로 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제 진료과목을 규정한 의료법 개정 절차만 남았다. 또 산부인과는 여성의학과로 개명을 논의중이고, 정신과 역시 내부적으로 투표를 하는 등 개명을 검토해 왔다. 이미 이름을 바꾼 과들도 많다. 지난해 임상병리과는 진단검사의학과로, 마취과는 마취통증의학과로, 치료방사선과는 방사선종양학과로 새 간판을 달았다.
학회에선 이름을 바꾸는 이유로 대부분 "일반인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을 든다. '방사선'은 원전이나 핵폐기물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떠올리게 하고, '정신과'는 돌았다는 뉘앙스만 풍긴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름 바꾸기에는 진료영역을 확장,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마취과라면 어쩐지 거부감을 가졌던 이들도 마취통증의학과라면 크게 망설이지 않고 찾아와 통증치료를 받는다.
학회측은 "진료과끼리 환자 빼앗기 경쟁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개명을 검토하는 과들은 환자 수가 줄고 있는 쪽이다.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감기 걸린 아이들이 이비인후과를 찾는 요즘 산부인과나 소아과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어쨌든 의료계가 많은 역할을 할수록 국민들로선 이득일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이름 바꾼 덕에 프리미엄이 치솟은 대학 학과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사실 명칭을 바꾸었다고 하루 아침에 진단, 치료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소아과가 지금까지 소홀히 한 청소년 진료를 얼마나 충실하게 할 것이며, 산부인과는 여성건강을 전반적으로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은근히 궁금하기만 하다. 잔뜩 기대수준이 높아진 환자에게 오히려 불만을 안기는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름을 바꾸느라 수고한 것보다 이름값을 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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