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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서 다리 잃은 양상욱씨 동생 상명·상준씨도 상이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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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서 다리 잃은 양상욱씨 동생 상명·상준씨도 상이군인

입력
2004.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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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맘땐 다들 그랬어. 별다를 것도 없는데 떠벌리기가 쑥스럽구먼. 나라가 있어야 자신이 있는 것 아닌가."서울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 7층. 해병대 출신 국가유공자 양상욱(73·사진)씨는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치다 뼈있는 말을 내던졌다. 양씨는 한국전쟁 당시 다리를 크게 다친 상이군인. 게다가 두 동생인 상명(67) 상준(62)씨도 같은 해병대 출신으로 국내복무 중 부상과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래서 3형제는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다.

제주 출신인 양씨는 한국전쟁 당시 야간수색을 나갔다 복귀하던 중 총알 4발이 왼쪽다리 혈관을 관통해 다리를 절단했다. 대부분이 전역하는 상황이었지만 해병대 사령관을 직접 찾아가 현역복무를 애원했고 결국 인천 경비대로 발령이 났다. 하지만 행정착오로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다시 사지(死地)인 경기도 문산 장단면으로 끌려 갔고 3일만에 야간 전투 중에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목과 허리를 크게 다친 뒤 4년 여간 병상생활을 했다. 제대 후에는 우체국 등에서 일하면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1남 2녀를 낳아 길렀다. 그 중 둘째 딸이 탤런트 양미경(43)씨다.

양씨는 "다리를 잃었을 땐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자고 다짐했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지만 나보다 못한 이들을 보며 희망을 찾았다"며 "처가집 반대를 무릎 쓰고 성치 않은 나와 결혼해 40여년을 동고동락한 아내와 티없이 자란 자식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양씨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두 동생이 상이 군인이 됐을 때였다. 59년 둘째 동생이 척추를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의족과 목발에 의지해 찾아간 병원에서 양씨는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동생 모습을 보고 피눈물을 흘렸고 주위는 눈물바다가 됐다. 막내 동생은 베트남 파병이후 고혈압 증세를 보이다 99년 고엽제 중독으로 갑자기 쓰러져 반신불수가 됐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 형제 팔자가 왜 이리도 억셀까'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더군. 처지를 비관하는 동생들에게 '나도 이렇게 사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할 수 밖에 없었지. 그나마 동생 모두 증세가 호전돼 몸이라도 가눌 수 있어 다행이야."

양씨는 사회지도층 자녀들의 병역기피를 보면 할말을 잃는다. 국민의 의무를 저버리는 이들과 그 자녀들이 어떻게 책임 있게 국가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겠냐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립묘지 안장 때 장군묘와 사병묘를 구분하는 것도 마뜩찮다.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국가에 헌신한 이들인데 죽어서까지 차별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양씨는 "정전 40주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장군묘와 사병묘가 한데 섞여 있었다"며 "쓸데없는 면적을 줄여 더 많은 유공자들을 국립묘지에 안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씨는 최근 심장질환에다 뇌경색이 심해져 왼손에 마비증세가 오는 등 온몸이 성한 곳이 없어 3개월마다 병원을 찾는다. 저녁에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다. 40여년 간을 곁에 있던 아내마저 정신질환으로 병상에 누워있다. 이 때문에 올해는 전우들과 매년 찾던 국립묘지에도 가지 못하고 현충일을 병상에서 보낸 양씨에게 마지막 바람이 있다.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돼서는 안되지. 국가 유공자들이 잊혀진 영웅들이 되어서도 안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 '보훈병원에서 사망'이라는 식으로 새기는 건 의미가 없어. 수많은 전우들이 어디에서 부상을 입어 고통 받았는지 비석에라도 새겼으면 좋겠어"

양씨가 지난해 둘째 딸 미경씨에게 보훈홍보대사를 맡도록 권유한 이유도 한국전쟁을 '망각의 늪'에서 건지기 위한 것이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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