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일생 행로와는 궤를 달리한 정치 행적에 대해 고백해야겠다. 새천년민주당과의 인연이다. 제2건국운동 상임위원장으로 있던 1999년 10월이었다. 평소 지면(知面)이 없던 국민회의 중진 정균환(鄭均煥) 의원이 만나고 싶다고 해 롯데호텔로 나갔다. 그는 뜻밖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려 하는데 거기에 나를 모시고 싶어 한다는 뜻을 밝혔다. 20여일 후에 그가 다시 만나자고 해 같은 소리를 했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내 길이 아니고 또 적성이 아니라고 사양했다.해를 넘겨 1월13일 한광옥(韓光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날 오후에 플라자호텔 19층에서 만났더니 민주당 대표를 맡아달라는 대통령의 전갈을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력과 자질이 정치에 적합치 않고 나 같은 사람은 정치권 내에 들어가면 힘이 약화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사양했다. 한 실장은 "우리 정치 여건이 새롭고 오염되지 않은 인물을 원하니 소절(小節)을 희생하고 대의(大義)를 위해 나서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께서 내일 아침 9시에 조찬을 함께 하자고 한다"며 오라고 했다. 그날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신문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본 여러 분들이 "그 정당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이튿날 오전 9시 김 대통령과 조찬을 하게 됐다. 김 대통령은 취임 이래 야당의 발목잡기로 국정운영이 매우 어려웠던 점을 설명하고 나서 " 4·13 총선의 승패에 국정의 성패가 달렸는데 결과가 불리하게 되면 현 정권 후반기는 아무 일도 못하게 돼 큰 혼란과 불행이 초래될 것이니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신당 대표 수락을 요청했다.
나는 내 입장과 처지를 이야기하고 내가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씀 드렸지만 대통령은 그래도 내가 들어가야 도움이 된다고 계속 부탁했다. 나는 "나라와 대통령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이 자리를 사양하면서 내 자신의 깨끗한 이미지만 유지하자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이자고 결심하고 수락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반드시 역사에 남는 공명선거로 치러야 하고 새로운 인물들과 여성을 많이 기용해야 합니다. 나를 선택해서 내세우려면 내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신의를 지켜주셔야 합니다"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은 "물론 그렇게 하겠고 서 위원장 말에 동감한다. 이런 인연을 맺은 것을 소중히 하자"고 약속을 굳게 했다. 조찬을 마치고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감, 새로운 운명에 도전한다는 기분을 느끼며 청와대를 나왔다.
사실은 전날 한광옥 실장을 만나고 나서 네 아들, 우리교회 신익호(辛翼鎬) 목사, 형님 같이 지내는 강원룡(姜元龍) 목사님에게 전화로 상의를 한 바 있었다. 아이들은 대선 때도 김 대통령을 지지했고, 평소 나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소명감을 이해하던 터라 "정 그러시면 한번 나가 최선을 다해 보시라"고 하고 찬성했다. 그러나 강 목사님은 "생각을 해보자. 그 정당 내부사정이 어렵지 않겠는가. 내일 아침 만나자" 고 했고, 신 목사님은 "서 장로님 같은 분이 들어가 깨끗한 정치를 하라"고 찬동을 표시했다.
청와대서 나와 11시에 신라호텔 커피숍에서 강 목사님을 만났다. 전날 밤에는 선뜻 찬성을 하지 않고 걱정하던 강 목사님은 만나자 마자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너무 큰 기대와 욕심은 갖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하라"고 부언했다. 뒤에 강 목사님은 "사실 걱정됐으나 이미 승낙했을 줄 알고 그렇게 격려했다"고 해 서로 웃은 일이 있다.
귀가하니 기자들이 많이 찾아와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 주고 며칠 동안 밀려올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새마을호를 타고 대구대 교수로 있는 셋째 경석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동대구역에 내리자 보도진이 나와 인터뷰에 응해야 했다. 손주 녀석들의 재롱을 보며 저녁 뉴스를 보니 나의 당대표 임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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