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오랑캐를 무찔러 한만 국경에 태극기를 꽂고,만세를 소련 모스크바까지 들리도록 부르고,
꽃잎처럼 떨어진 전우에게 '고이 잠드시오'라고 전했다."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빛 바랜 편지들이 현충일인 6일 반세기 만에 공개됐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의 긴장감과 밀려드는 고독을 잠시 접고 화랑담배를 입에 문 채 펜을 들었을 이 편지의 주인공은 1951년 10월17일 강원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김종석 하사.
편지는 시아버지의 편지를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해 온 김 하사의 며느리 박현자(51·경기 성남시 수성구)씨가 최근 국가보훈처에 공개를 의뢰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공개된 편지는 동생에게 2통, 어머니에게 1통, 부인에게 보내는 1통 등 4통이다.
편지는 홀어머니와 아내, 자녀, 동생 등 후방(당시 경기 여주군 대신면)의 가족을 노심초사 하는 장남의 심경이 마치 한편의 시처럼 씌어 있다. 힘 있는 필체로 써 내려간 전승 의지도 편지 곳곳에 녹아 들어 있다.
"뼈가 천만 번 부서져도 기어코 싸워 이기마. 승리함으로써 얻은 평화 속에서 사랑하는 동생 너도 얻고, 행복도 자유도 얻는다. 그리고 지난날 붙잡고 섭섭히 작별하던 너 대신, 멋있게 웃는 너와 함께 힘차게 한번 껄껄거리고 싶다." "만세를 목이 터지도록 부르고, 너(동생)를 그리어 화랑담배 피워 물고는 벅찬 감격에 한숨 길게 쉬면서도 앉으면 네 생각이 눈에 떠오른다."
'어머님전 상서'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김 하사는 "수개월이 경과토록 안후를 복승치 못하여 죄송 만만이며(중략) 소자의 근심은 농사일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다만 걱정이 되옵니다"라며 조부와 어머님의 안녕을 빌었다.
또 아내에게는 "무정하게도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당신 생각이 떠올라 일자서신을 통하오니, 객지에 있는 졸부를 상봉한 듯이 편지를 받아 주소서"라고 말을 꺼낸 뒤 "매일 고지에서 백병전으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있으니 안심하소서. 귀향할 때까지 신체 건강하기 바라오"라는 당부를 남겼다.
보훈처는 편지 4통 가운데 3통의 수신날짜가 8월19일로 돼 있고, 중공군과의 교전상황이 담겨 있는 점으로 미뤄 편지가 51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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