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백일 년 동안의 여행/바버라 포스터, 마이클 포스터 지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백일 년 동안의 여행/바버라 포스터, 마이클 포스터 지음

입력
2004.06.05 00:00
0 0

백일 년 동안의 여행바버라 포스터, 마이클 포스터 지음·엄우흠 옮김

향연 발행·1만8,000원

어쩌면 이토록 정열적으로, 이토록 다양한 삶을 살았을까!

반 세기 전 세상을 떠난 유럽 여자 알렉산드라 다비드넬(1868∼1969)의 생애는 참으로 감탄스럽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려면 여러 단어가 필요하다. 아나키스트, 페미니스트, 오페라 가수, 인류학자, 언어학자, 지리학자, 소설가, 번역가, 저널리스트, 불교학자, 탐험가, 구도자.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무려 101년을 살다 간 그의 삶은 여러 사람의 생을 합친 것에 맞먹는 부피와 밀도를 갖고 있다. 서구에서는 20세기 초반 금단의 땅이던 티베트의 라싸에 들어간 최초의 백인 여성으로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웅으로, 30여 권의 뛰어난 책을 통해 수백만 명의 독자를 거느린 불교학자 겸 작가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탐험가로 알려져 있다. 앨런 긴즈버그, 로렌스 펄링게티 등 1960년대 미국의 반체제 문화운동 집단인 이른바 '비트 세대'의 시인들은 그를 숭배했다. 불교와 명상, 요가 등 동양의 정신적 유산이 오늘날 서구 정신의 새로운 돌파구로 각광받게 된 뉴에이지 물결의 배후에도 다비드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다비드넬의 평전 '백일 년 동안의 여행'(원제 'The Secret Lives of Alexandra David―Neel'·1998년)은 미국인 부부 바버라, 마이클 포스터가 20여 년의 세월을 바쳐 자료를 모으고 추적해서 쓴 책이다. 페미니스트 작가이며 뉴욕시립대 교수인 바버라,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마이클은 다비드넬을 만났던 사람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기억을 수집하고, 영국 정부 인도성(省)의 비밀문서를 뒤지고, 다비드넬이 쓴 편지와 책들을 샅샅이 읽고 분석하는 등 집요하고 치밀한 작업 끝에 다비드넬 전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내놨다.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뛰어난 전기다.

560쪽에 이르는 책에서 다비드넬은 다채로운 생애에 걸맞은 복합적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전 생애에 걸쳐 어떤 풍모에서든 공통된 것은 끊임없는 열정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영혼의 초상이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탐험과 공부라는 열정으로 평생을 일관하면서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자신의 이전 삶을 벗어던지기를 거듭했던,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이자 치열한 구도자의 위용이다.

특히 결혼 7년 만인 1911년, 43세 중년의 나이에 떠난 두번째 아시아 여행으로 그의 삶은 크게 바뀐다. 남편의 후원과 이해 덕분에 가능했던 이 여행은 원래 1년 반 동안 티베트를 답사하려던 것이었는데, 무려 14년 간 계속됐다. 인도에서 버마, 실론, 중국, 조선, 일본까지 무려 3만㎞를 주파하는 긴 여행이었다. 한때 급진 좌파로,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활동하며 파리와 런던을 오가면서 보낸 시절을 뒤로 한 채 그는 붓다의 가르침을 찾아가는 영혼의 순례자가 됐다. 13대 달라이 라마를 만났으며, 3년 간 눈 덮인 히말라야의 산중 동굴에서 티베트 승려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도를 했다. 인도 북부 작은왕국 시킴의 왕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1924년 2월 마침내 평생 꿈꾸던 영혼의 수도 라싸에 들어갔다. 중국의 윈난성을 출발한 지 4개월 만이었다. 양자로 삼은 티베트 청년 융덴 라마와 함께 한겨울에 추위와 맹수, 산적의 습격 등으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면서, 탁발 순례자로 변장한 채 걸어서 히말라야를 횡단했다. 목숨을 건 힘든 여정을 견딘 힘은 오직 하나, 삶과 죽음을 넘어 자유를 꿈꾸는 구도자의 열정이었다.

불교학자, 불교신도로 불리기를 원했던 그는 유럽으로 돌아온 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디뉴에 '삼텐 종'('명상의 집'이라는 뜻)을 짓고 정착한다. 69세 되던 해 다시 영원한 그리움의 땅 티베트를 여행했고, 100세 때 다시 티베트에 가려고 여권을 갱신했지만, 떠나지 못하고 이듬해 죽었다. "무덤조차 나를 붙잡지 못할 것"이라던 자유로운 영혼의 여걸은 그렇게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그의 삶과 여행을 바짝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그가 몰두했던 고대 인도철학과 문화, 티베트 문화와 불교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깔고, 그가 겪었던 19세기 말 유럽의 정신적 풍경과 20세기 초반 열강의 침략에 휘둘리던 아시아의 격동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 특별한 인물의 강력한 자장은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불현듯 멀리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