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 의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남북 장성급회담 합의 의미

입력
2004.06.05 00:00
0 0

남북 군 당국이 밤샘 협상 끝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상에서의 우발충돌을 막기 위한 실천방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이번 합의는 1999년과 2002년 발생한 남북 해전으로 '한반도의 화약고'가 돼버린 서해에서의 충돌방지를 목표로 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의 긴장완화와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회담 결과는 전형적인 윈-윈 합의였다. 남측은 국제상선공통망(156.8㎒· 156.6㎒) 활용과 깃발·발광신호를 통한 상호 오해 불식, 불법조업 중국 어선의 동향 정보 교환 및 남북 공동의 대중압력, 경의선 통신망을 이용한 무력충돌 방지 장치 마련 등을 얻어냈다. 남측은 이번 합의내용이 잘 실천되면 서해상 우발 충돌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측으로서도 밑질 것이 없는 장사를 했다. 북측은 휴전선 인근에서의 상호비방 중지 합의로 북한 군인과 주민에게 파급효과가 큰 남측의 대북심리전을 차단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번 합의는 같은 기간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군사분야가 경제분야에 비해 진도가 계속 뒤질 경우 "평화와 안전에 대한 성과는 없이 퍼주기만 한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터져 나와 남북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북은 불과 두 차례의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만큼 향후 이를 발판으로 군사문제의 본질인 군비통제로까지 논의의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 나아가 2000년 9월 제주에서 한 차례 열린 후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국방장관 회담의 재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양측은 이번 회담 과정에서 NLL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견해차를 거듭 확인했으나 우발충돌을 막기 위한 실천장치 마련이 급선무라는 데 공감을 형성, 본질적인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NLL 인정 여부는 향후 남북회담과정에서 두고두고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속초=김정호기자 azure@hk.co.kr

■ 남측 대변인 일문일답/"NLL문제로 한때 진통"

문성묵(육군 대령·사진) 남북 장성급 회담 남측 대변인은 4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바다와 육지에서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3차 회담은 언제 열리나.

"3차 장성급 회담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실무대표 접촉은 장성급 회담 틀 내에 있는 것이다. 합의서가 마련됐기 때문에 합의서 조항별로 후속조치가 필요한 실무조항을 논의하기 위해 실무대표 약간명이 우선 만난다."

―막판 진통을 벌인 이유는.

"경계선과 관련된 문제가 중요한 쟁점 사항이었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진척이 되지 않다가 밤 사이 합의가 된 이유는.

"6월이 가기 전에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했다. 서해 우발충돌 방안은 시일이 늦어지면 안 되는 긴급성이 있다. 북측에서 제기한 군사분계선 선전활동 중지와 수단 제거도 신뢰구축과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서로의 공감대가 작용했다. 북측이 서해 우발충돌 방지에 대해 동의하면 우리측도 북측이 제기한 문제를 동의하는 방식으로 일괄해서 타결키로 의견이 접근했다."

■대형전광판·확성기·전단… 총칼없는 심리戰 "휴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을 제거하기로 함에 따라 정전 이후 현재까지 계속돼온 전방지역의 총칼 없는 심리전이 막을 고하게 됐다. 남북은 6·15 선언 이후 서로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중상은 중단했으나 훨씬 지능화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자극해왔다.

선전활동은 크게 대형전광판, 돌에 쓴 글씨 등 시각매개물과 확성기, 전단(삐라) 등에 통해 이뤄져왔다. 남측은 대형전광판을 활용, 체제 선전보다는 일기예보와 뉴스 전달 등에 주력함으로써 북한 군인과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현재 군사분계선 지역의 시각 매개물은 대략 남측에 100여개, 북측에 200여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확성기도 비슷한 숫자가 있다. 수적으로는 북측이 많지만 방송 프로그램이 충실하고 시각물의 이미지도 화려해 선전효과는 남측이 월등하다는 평가다.

15일부터는 이 같은 선전활동이 중지된다. 남북은 또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과 판문점지역이 포함된 군사분계선 표식물(남북이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에 공동으로 설치한 위치 표시 이정표) 0001호―0100호 구간을 시작으로 8월15일까지 3단계에 걸쳐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모든 선전수단을 제거할 계획이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석가탄신일 점등행사 등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이다. 이에 대해 문성묵(육군 대령)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남측 대변인은 "전방에 근무하는 우리 장병을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크리스마스트리 등이 북측에게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돼 왔다는 점에서 논란 의 여지가 있다. /김정호기자

■ 이모저모/밤샘 협상끝 돌파구

설악산 켄싱턴스타호텔에서 열린 무박2일간의 남북 장성급 회담은 밤샘 협상 끝에 남북 긴장완화의 돌파구를 마련한 탓인지 양측 대표단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재회를 약속하는 등 축제분위기에서 막을 내렸다.

안익산 북측단장은 4일 오전 7시33분 합의서 서명 직후 "양측 단장이 한 문단씩 낭독하면서 합의문을 확인하자"는 남측 박정화 수석대표 제의에 "우리는 잠을 잤는데 (잠을 못자고 고생한) 부단장들이 이번 합의를 탄생시킨 사람들이니까 부단장이 문안을 대조토록 하자"고 수정 제의했다. 이에 따라 양측 실무대표가 합의서 한 문단씩을 읽은 후 양측 수석대표가 서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앞서 남측 회담대표 5명은 이날 오전 6시50분께 회담장 앞에서 대기하다가 뒤이어 내려온 북측 대표단과 일일이 악수했다. 안 단장은 남측 대표단에게 "얼굴이 좋아보인다"고 인사를 건넸다. 안 단장은 서명식 후 호텔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호텔 관계자가 "북한 군복을 처음 봤다"고 하자 "무섭지 않느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에 호텔 관계자가 "좋은 회담하러 오신 분인데 무섭다니요"라고 하자 "그게 바로 이번 회담의 성과"라고 화답했다. 안 단장은 또 한 호텔 직원에게 "실례 많았다. 어제 밤에는 정말 폐를 많이 끼쳤다"고 말했다.

안 단장은 회담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는 길에 한 남측 회담 관계자에게 "초면인데 시간이 짧아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남측 관계자가 "다음에는 백두산에서 회담하자"는 말에 밝은 표정으로 "그러자"고 답했다. 북측대표단 일행은 서명식을 마친 뒤 호텔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회담장 겸 숙소였던 호텔을 떠났다.

/설악산=공동취재단·김정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