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으로 한수영(36)씨의 장편 '공허의 1/4'과 김주희(27)씨의 장편 '피터팬 죽이기'가 선정됐다. 최근 많은 문예지의 신인문학상이 수상자를 내지 못해 '신인의 기근'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오늘의작가상 공동 수상은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평론가 김화영 이남호 김미현씨 등 심사위원들은 "어느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았던 행복한 고민이 공동 수상이라는 풍성한 최종 결과까지 이어져 흐뭇하기 그지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늘의작가상은 2000년 고은주·우광훈씨에 이어 두번째로 공동수상작을 냈다.
●공허의 1/4
한수영 지음
민음사 발행·9,000원
●피터팬 죽이기
김주희 지음
민음사 발행·9,000원
한수영씨는 2002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소설가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여직원 이야기인 '공허의 1/4'로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적 입지를 단단하게 다지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룹알할리 사막에 가면 관절염이 낫는다는 얘기를 들은 여자는 사막에 가려고 적금을 붓는다. 여자가 다니는 직장인 아파트 단지에는 들고양이와 비둘기의 시체 등을 우는 잡역부 남자가 있고,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말을 잃어버린 아이가 있다. 엄마가 살고 있다는 별나라에 가기 위해 아이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우주선을 만든다. 어머니의 빚을 짊어지게 된 여자는 탈출을 꿈꾸고, 아이와 남자는 여자를 우주선에 태워 하늘로 날려보내고 싶어한다.
한씨의 소설에서 환자인 여자는 실은 삶이라는 습기에 시달리면서 관절염을 앓는 인간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자는 습기를 말릴 수 있는 사막을 이상향으로 꿈꾸지만 닿지 못하고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난다. 그만큼 유토피아는 삶에서 멀리 있고, 살아가는 현재는 막막하다. 더욱 서글픈 것은 룹알할리 사막에 대한 소망이 실은 헛된 꿈이고 도피의 상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평론가 이남호씨는 희망의 문을 선명하게 그려놓지 않은 이 소설에 대해 "'답답한' 세상을 '답답한' 성실성으로 그려내는 답답함"이라고 평했다.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리는 김주희씨의 '피터팬 죽이기'는 20대 청년 김예규의 방황과 불안, 고민이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진 소설이다. 공동 수상작인 '공허의 1/4'이 높은 완성도로 평가를 받은 것에 비해 '피터팬 죽이기'는 젊음의 에너지와 패기에 주목이 모아진 작품이다. 자취를 시작한 뒤 외로움을 느끼던 예규는 동성인 친구 수호와 연인이 된다. 수호는 유학을 가버리고 예규는 대학을 졸업하지만 청년실업 대열에 서게 된다. 예규는 대학원에 진학해 초등학교 동창 혜원을 만나지만, 혜원은 좀처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오래 사랑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대학원도 떠나야 하는 곳이 되고, 마음을 터놓았던 동아리 동기 영길도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 예규는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한다.
현실을 제 것으로 구성해나갈 기운이 없는 청년은 사회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성장이 멈추고 환상의 세계에만 머무는 '피터팬'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소설은 내용처럼 전개 방식도 불안하고 산만하지만 그 서툰 모습이 오히려 새롭고 낯선 것으로 보인다. 김화영씨는 "이 소설 덕분에 오늘의 세대는 그들 특유의 삶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적절한 언어를 발견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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