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하는 곳은 꽤 있는데 좀더 싼 곳을 알아보고 있어요." 열린우리당 강기정(광주 북갑) 의원실 정성학 보좌관은 요즘 아침·저녁으로 부동산중개소에 전화를 걸어 원룸 아파트를 알아보느라 다른 일을 못할 지경이다. 내주부터 본격적인 의정활동이 시작되는 데도 아직 강 의원의 숙소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지방출신 의원 100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강 의원처럼 집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지역 정치인이나 유지가 대부분이었던 이전과 달리, 재야·시민운동가 출신이 많아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의 집값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
16대까지만 해도 지방출신 국회의원과 가족들의 실질적 주거지는 서울 강남 등지에 많았다. 지역구에 집을 둔 경우도 대개 여의도나 목동, 용산의 동부이촌동 등의 아파트를 구해 오고 가며 생활했다. 비싼 전세비용 때문에 쩔쩔매는 의원은 극히 드물었고, 한나라당 전용학(충남 천안갑) 전 의원이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에서 보좌관 두 명과 숙식을 함께 한 게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우리당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당분간 지인들의 집을 전전할 생각이다. 조 의원은 "부산 전셋집이 거래되고 나면 대출을 받아 조그마한 전세라도 얻을 생각"이라며 멋적어했다. 같은 당 이영호(전남 강진·완도) 의원은 신촌에 사글세로 원룸을 구해 대학생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바쁜 일이 있으면 선후배 집을 이용한다.
민노당은 사정이 더하다. 제주에 집을 둔 현애자 의원은 몇 달째 선배들에게 신세를 지다가 최근 남산 인근에 전세를 구했다. 현 의원측은 "여유가 없어 전액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 낼 일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까지 전농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강기갑(경남) 의원은 강서구 방화동에 전세 7,500만원짜리 연립주택을 계약했지만, 은행대출이 걱정이다. 다른 모 의원은 여의도의 '모텔'에서 기거하다 강서구의 조카 집에 신세를 지려 했지만 눈치가 보여 포기했다. 당에서 180만원의 월급만을 받는 이들은 집보다 지역구를 오가는 교통비가 더 걱정이다.
하지만 전문직 출신이 많은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변호사 출신인 주호영 의원(대구)은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얻기로 했다. 이성권 의원(부산 진구을)은 "지방선거 때문에 시간이 없어" 집을 구하지 못했다. 한 당직자는 "돈 때문에 집을 못 구한 의원이 없냐"는 질문에 "그야 말로 딴나라당 얘기"라고 파안대소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