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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52> 제2건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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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52> 제2건국운동

입력
200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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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그 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국정을 새 출발하기 위해 제2건국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리고 9월2일 시민단체, 재야 등 각계 대표들을 모아 제2건국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대회를 가졌다. 나는 변형윤(邊衡尹), 김상하(金相廈), 이어령(李御寧), 송월주(宋月珠) 이문영(李文永) 정의숙(鄭義淑) 조완규(趙完圭) 강문규(姜汶奎)씨 등과 함께 19명 공동위원장 중 한명으로 참여하게 되었다.26일에 공동위원장과 고문 등 17명이 청와대로 초청을 받아 김 대통령으로부터 당부의 말씀을 들었다. 그 날 오후 생산성본부의 제2건국운동 본부에서 공동위원장 회의를 했는데, 민주화운동을 오래 했고 김 대통령과 가까운 이문영 씨가 "제2건국 운동은 출발부터 잘못되고 있다. 순전히 국민운동으로 되어야 하는데 어째서 청와대에 가서 격려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발언을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공동위원회 대표는 경제학자 변형윤씨, 상임위원장에는 평론가인 이어령 교수, 실제 주무를 맡은 기획단장에는 행자부 장관인 김정길(金正吉)씨가 임명되었다.

야당과 일부 언론, 보수진영에서 독재시대도 아닌데 이런 국민운동을 관변에서 하느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은 민주평통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잘살기운동을 법제화해 추진했다. 김 대통령도 그가 염원하는 개혁을 위해 이런 국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고, 있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듬해 2월3일 잠실체육관에서 제2건국을 다짐하는 한마음다짐대회가 열렸다. 나는 공동위원장들과 귀빈, 정당대표 등과 함께 단상의 대통령 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례, 경과보고에 이어 대형스크린에 신지식인 활동이 소개되는 중에 김정길 장관이 김 대통령에게 불려가 귓속말을 듣더니 나한테 와서 "대통령이 이 영상이 끝나면 축사를 해달라고 하십니다"하는 것이었다.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식순에 추진본부 대표 인사가 없었던 것이 탈이었다. 나는 "공동위원회 의장은 변형윤씨인데 내가 왜 축사를 하는가"하고 사양했다.

김 장관이 대통령에게 다시 갔다 오더니 "축사가 아니면 강연이라도 한 10분 정도 하라고 하신다"는 것이었다. 단상 밑에서는 1만 여 명이 쳐다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그 영상이 끝난 뒤 평소 생각했던 내용을 7,8분간 연설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정작 나서서 말 할 때는 머리도 맑고 해야 할 말을 한 것 같았다. 식이 끝난 후 김 대통령이 "참 수고했다"고 했다.

약 2주쯤 지나 일본 오사카(大板) 시립미술관에 재일교포 이병창(李秉昌)씨가 국보급 도자기 등 진귀한 미술품을 기증, 그 개관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러 갔다. 그런데 김한길 정책수석이 국제전화로 "대통령께서 서 위원장이 돌아오시는 대로 만나자고 한다"면서 사실은 제2건국의 상임위원장을 맡기려 한다고 했다. 나는 적임이 아니라고 거듭 말하고도 고민을 하면서 19일 청와대를 방문했다. 김 대통령은 "제2건국운동이 거의 반년이 됐는데 잘 추진이 안되고 있다. 경험이 많은 서 위원장이 꼭 맡아서 해주어야 겠다"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 무거운 책임을 수락했다. 내가 상임위원장,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온 김상근(金祥根) 목사가 기획단장, 그 밑에 이만의(李萬儀) 현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이 기획운영실장을 맡아 새 출발을 했다.

취임이후 지방을 돌아다니며 부정부패 추방, 국민화합, 신지식인운동 등을 전개했다. 그러나 여소야대로 지원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가 안되고, 예산도 너무 적어 추진이 잘 안 돼 고충이 많았다. 그 가운데 포철 교육지원재단 이대공(李大公) 이사장의 지원으로 청년연합회장 김형주(金炯柱)군을 대표로 한 '청년세계탐구단' 13개 팀을 세계 각국에 보낸 것이 보람을 느낀 일이다.

2000년 1월초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맡게 되면서 나는 상임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후임에는 김상하 대한상의 회장이 선임되어 작년까지 이 운동을 계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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