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 ‘트로이 전쟁’을 한번 들여다 볼까. 아킬레우스와 오딧세이, 헥토르 등 그리스 신화속 영웅들의 목숨 건 10년 전쟁의 원인은 다름아닌 ‘미인대회’ 때문이었다.‘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미모를 겨뤘다. 심판자는 목동 신분이었던 파리스. 미의 왕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돌아갔다. 그 대가로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의 아내 헬레네를 얻어 트로이로 도망쳤고 그것이 곧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상품화했던 것일까. 인간 감정의 원형을 이야기하는 그리스 신화는 최고의 미인이 되고 싶은 여성들의 마음이 시대를 초월하는 본능이 아니겠냐고 얘기한다.
그 본능적 욕구를 공동체 전체가 즐겁게 향유한 문화, 그것이 바로 미인대회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두말 할 필요 없이 미스코리아 대회다. 반세기 가까이 미스코리아 대회는 온 국민이 함께 흥분하고 즐겼던 미의 제전이었다. 올해는 누가 미스코리아 왕관을 쓰게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TV를 지켜봤고, 새롭게 탄생하는 미의 주인공에 환호했다.
고현정, 이승연, 손태영 등 숱한 연예인을 배출해 ‘최고의 스타 등용문’으로 불렸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지금 예전과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한다. 굳이 미인대회를 통하지 않아도 스타가 될 수 있는 여러 길이 열렸고, 여성단체들의 안티 운동도 한몫 했으며, 한때 심사의 공정성이 문제된 까닭이다. 특히 ‘연예인의 산실’이라는 명성은 미스코리아의 위세를 떨치는 측면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당당한 신세대들이 만들어 내는 미스코리아상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이런 저런 주장과 변명이 필요 없다. 이들에게 미인대회는 적극적인 자기 표현의 무대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절제의 미덕을 몸에 익힌 이들은 남다른 꿈과 열정, 야심과 포부를 갖고 있다. 연예계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전문 직종에 도전해 자신의 미모를 한껏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예쁘면 공부 못한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13일 오후 6시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리는 제 48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지역 예선을 통과한 58명의 신세대 가인(佳人)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도전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2002 진 금나나양 "하버드 합격에도 도움이 됐죠"
"미스코리아에 관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의 안목을 키우고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하는 좋은 기회니까요."
경북대 의대 재학 중 올초 MIT대와 하버드대에 동시 합격해 화제를 낳은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양. 하버드대 생물학과로 진로를 정해 올 9월 입학하는 그는 미스코리아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한 해 동안 한일 월드컵, 부산 장애인 올림픽,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자선 바자회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국제 대회에도 출전하면서 누구보다도 바쁜 일년을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맥을 넓힐 수 있었고, 세상 보는 눈도 더욱 커진 것 같아요. 하버드대 합격 때도 저를 더욱 특별한 학생으로 돋보이게 하는데 도움을 줬죠.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이 또 항상 제 자신을 잘 가꾸게끔 하는 자극제가 되죠."
안티 미스코리아 등 여성단체의 비판에 대해 금양은 "해외에선 미인대회를 큰 축제로 여기고 입상자도 한 분야의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해준다"며 "선입견을 버리고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양은 "해외에선 대기업들이 국제적인 미인대회에 참여해 상품홍보기회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국내에선 아직 그 힘을 모르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지난달 하버드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뒤 유학을 준비중인 그는 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 때는 호암상 시상식이 열리는 서울 호암아트홀에 있었다. 무슨 상을 받는 것이냐고 묻자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시상식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구경왔다"고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자기 개발에 철저한 신세대 미스코리아다웠다.
금양의 또다른 관심사는 다이어트. 지난해 공부에만 몰두해 몸무게가 거의 10㎏ 가량까지 쪘다고. "예전에는 그냥 날씬해보이고 싶어서 살을 뺐었는데, 지금은 빼빼 마른 몸이 아니라 공부에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파워풀한 몸매를 만들고 싶어요."
/송용창기자
■협력업체 어떤곳
● 드레스 황재복 웨딩클래식
● 한 복 김희수한복
● 수영복 미치코런던
● 구 두 이사벨
● 왕 관 루첸리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미용 및 패션 전문업체들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각 분야의 유명업체들이 협력업체로 참가해 대회를 더욱 빛낸다.
대회 당일 미스코리아 후보자들이 입는 드레스는 웨딩드레스 전문업체인 황재복웨딩클래식이 마련한 옷. 이승엽 커플 등 유명 스타들의 웨딩복을 디자인한 황재복씨가 운영하는 업체다.
대회 당일 '한복 패션쇼' 때 입는 한복은 김희수한복측이 제공한다. '미스코리아 한복'의 대명사로 올해로 17년째 한복 의상을 담당해왔다. 수영복은 유명 수영복 브랜드 미치코런던이 제공하며 구두는 구두 브랜드 이사벨 제품이다.
미스코리아 타이틀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왕관(사진)은 명품 다이아몬드 브랜드 '루첸리'에서 제공한다. 올해 처음 미스코리아 협력업체로 참가, 미스코리아 왕관을 새롭게 디자인해 선보일 계획이다. 미스코리아가 받는 트로피는 오남미 골프어워드에서 제작한다.
또 대회 당일 수빈아카데미에서 후보자들의 메이크업을 무료로 해주며, 란 사진실에서 사진을 담당한다. 여성토탈클리닉인 메디아트는 후보자들에게 미용팩을 제공한다. 미스코리아들의 경호는 충효기획이 맡았다.
■1957년 시작 미스코리아 변천사
"금년 23세의 박현옥양이 4290년 미스코리아로 선발되었다. 오는 7월11일 미국 롱비치에서 거행될 미스 유니버스에 참가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좌석은 물론 복도에까지 넘쳐흐르는 수많은 관중과 못 들어가서 앞을 다투는 문밖의 군중들로 일대 혼잡을 이룬 서울 명동 시립극장에서…." (한국일보 1957년 5월20일자)
제 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첫 페이지였다. 발디딜 틈 없는 군중의 운집, 그 흥분과 기대대로 지난 반세기동안 미스코리아 대회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미인을 배출하는 대회였다.
초창기 미스코리아는 설립 목적 그대로 국위 선양을 위한 민간 외교 사절단이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파견할 미의 사절을 뽑기 위해 대회가 설립됐는데, 국제적 교류가 미미했던 당시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우리나라를 해외에 홍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민간 외교무대였다. 한국전쟁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실제로 59년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씨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인기상과 스피치상 등 4개 부문을 수상, 국민적 기대에 부응했다.
때문에 미스코리아 대회는 출발부터 서구적 미의 개념이 도입돼, 눈도 크고 코도 높으며 다리도 늘씬한 미인들을 배출했다.
때론 과도하게 서구적 스타일의 미인이 추구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활달한 성향의 미인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만큼, 미스코리아 출신들도 대부분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주부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장래희망 난에도 대부분 '현모양처'라고 썼다.
1972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가 지상파로 중계되고 때마침 대중문화도 싹을 틔워 나가자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그 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 연예계로 하나둘씩 진출하기 시작했다. 77년 미스코리아 진 김성희씨가 가수로 데뷔, '미스코리아출신 연예인'이라는 스타트를 끊은 후 80년대 중·후반과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숱한 방송인과 연예인이 탄생했다. 87년 진 장윤정, 88년 진 김성령 선 김혜리, 89년 진 오현경 선 고현정, 91년 진 이영현 선 염정아, 92년 진 유하영 선 장은영 미 이승연, 93년 진 궁선영, 94년 진 한성주 미 성현아 등이 대표적.
특히 이 시기는 한국미의 절정기로 평가된다. 주용진 한서대 얼굴연구소장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은 한국적 미와 서구적 미, 남성적 기개와 여성적 우아함이 조화를 이룬 '성숙미'의 시대였다"며 "미의 관점에서만 볼 때 가장 뛰어난 미인들이 나온 시기"라고 말했다. 이는 88올림픽과 경제성장 등으로 역동적이고 건강함이 넘쳐 흐르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성숙미보다 귀엽고 앳된 소녀적인 미인상이 추구되면서 2000년 진 김사랑 미 손태영, 2003년 진 최윤영 등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의 미스코리아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관심도 90년대 중반부터 차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이 독자적으로 성장하자 연예계 진출 통로로서 미인대회의 영향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심사 및 선발과정의 잡음, 여성단체의 안티 미스코리아 캠페인 등도 하락세를 부채질했다.
반면 2000년대 들어 또다른 특징이 나타났다. 미스코리아 참가자들의 학력이 대폭 높아진 점이었다. 연예계 진출보다 전문직종을 개척,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2002년 진 금나나, 선 장유경, 2003년 진 최윤영 등이 이 같은 신세대 미스코리아상을 만들고 있다. 대회 관계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미인대회도 여성의 커리어를 높여주는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어떻게 뽑나
"왜 쟤가 뽑힌 거야" "저 얼굴이 훨씬 더 이쁜데…" 등등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때마다 나오는 크고 작은 소리다. 대체 심사기준이 뭐냐는 질문도 많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 만큼 의견이 분분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회 당일 TV로만 보여지는 참가자들의 미모와 재능은 실제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심사는 두 차례에 걸친 사전 심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회 전날 반나절 이상 용모 심사와 수영복 심사, 개별 인터뷰 심사를 하고, 대회 당일 오전에도 다시 2차 사전 심사 시간을 갖는다.
다만 심사위원들이 사전심사 때는 채점을 하지 않고 본 대회 현장에서 점수를 입력해 진선미를 가리는데, 대회 당일 화려한 조명과 어수선한 분위기 등으로 후보자를 제대로 보기 힘들어 사실상 사전심사때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90년대 중반부터 1차 사전심사 때 화장을 하지 않은 노 메이크업 상태로 심사를 받는다는 점도 특징. 화장 전과 화장 후의 얼굴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다. 어느 쪽을 중시할지는 심사위원 판단인데, 최근 자연미가 강조되면서 노메이크업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또 TV 화면에선 용모가 가장 돋보이지만, 심사위원의 심사기준은 용모가 1/3, 전체적인 균형미가 1/3, 인터뷰가 1/3이다. 심사결과와 시청자의 판단이 달라지는 것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
심사위원 수는 15∼20명선. 미스코리아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심사위원은 사전심사 전날 확정된다.
■2004 본선 합숙 스케치
경기 기흥시 코리아골프 아트빌리지. 지금 이곳은 꽃 축제를 연상케하는 화사함으로 들떠 있다. 꽃보다 더 아리따운 축제라고 해야할까,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손님들로 북적댄다. 2004년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58명의 전국 가인(佳人)들이 그들. 서울 등 16개 시·도 미스코리아와 미주 지역예선에서 뽑힌 이들은 13일 열리는 본선을 앞두고 이곳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그 현장에서 지덕체(智德體)의 팔방미인들이 내뿜는 땀과 열정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애환과 야망을 들여다봤다.
늦은 밤, 타오르는 열정
아트빌리지 내 프라자 센터.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장대같이 늘씬한 58명의 미녀들이 리듬에 맞춰 부지런히 몸을 흔든다. 얼굴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발바닥은 퉁퉁 부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때 펼칠 쇼를 위한 춤 연습이다. 낮에는 강연을 듣거나, 프로필 촬영, 봉사 활동 등 다양한 일정이 있어 무대 연습은 밤 밖에 할 수 없다. 밤 11시까지 계속되는 연습, 50여㎏ 안팎의 몸무게로는 감당하기 힘든 강행군이다. 합숙한지 며칠 되지 않아 한명이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일도 생겼다.
연습 도중 한 명이 구석으로 가더니 눈시울을 붉힌다. 옆 친구가 "춤을 잘 따라 하지 못해 속상해 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애초 특기조사를 할 때만 해도 제대로 밝히지 않아 주최측을 조바심나게 했지만 이들의 본색이 나오기까지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어리딩, 힙합, 한국무용, 발레, 콘탁, 태권도, 기악 등 쇼 무대에서 펼칠 장기가 줄줄이 나왔다. 남에게 뒤질세라 이젠 조금의 양보도 없어 보인다. 경북 진 하재원(22)양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지만, 언제 이런 일 해보겠어요"라며 "정말후회 없는, 아쉬움이 없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며 웃는다.
내 어릴 적 꿈은 미스코리아
고된 합숙이 힘겨운 듯 때론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지만 내내 묘한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경쟁심을 감추지 못했다. 말하자면, 청춘의 열정이다. 무엇 때문에. "예전에 TV에서 미스코리아 대회 하면 녹화해뒀다가 수십 번도 넘게 봐서 대회 전부를 외워버리곤 했어요." 울산 선 차연희(23)양의 얘기다.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말은 "내어릴 적 소망은 미스코리아"다. 이중 또 많은 이들은 "엄마, 언니 소망도 미스코리아다"고 말한다. "언니둘 모두 미스코리아 대회에 무척 나오고 싶어했는데, 아버님이 반대한데다, 키가 크지않아 결국 포기했어요. 지역 예선 통과로 저와 제 언니의 꿈이 반쯤은 이뤄진 셈이죠." 대전충남 미 김혜숙(21)양의 고백.
경남 선 유희경(22)양은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가 남달리 애틋하다. 유양이 다섯살이었던 1987년 대한항공 사무장이었던 부친이 KAL858기 폭파 사건으로 숨진 것. "아버지께서 '곱고 예쁘게 키워서 미스코리아에 내보내야지'라고 말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크면서 주변에서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미스코리아 내보냈을 텐데…', 그런 말씀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더 아버님 생각이 간절하게 나네요."
본선 대회 결과를 떠나 이미 이들은 지역 미스코리아로 선발돼 절반의 꿈은 이뤘다. "예선이 끝난 뒤에 한 가게 주인이 저를 알아보는데,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는 인천 진 강영옥(23)양. 하지만 그는 "앞으로 평생 미스코리아 타이틀이 따라다닐 텐데, 미스코리아로서 행동 하나하나 반듯하게 해야겠다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연예계 진출의 디딤돌?
강양은 뜻밖의 말도 털어놓았다. 또래의 친구들처럼 연예인을 동경했던 그는 대회참가 동기도 연예계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는데 예선을 통과한 후 오히려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제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어요. 굳이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연예계로 가느니 차라리 제 전문분야를 찾아 사회에 진출하면 더 잘 할 것 같아요. 시야가 더 넓어지고, 자신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미스코리아 대회가 그동안 연예계 진출의 디딤돌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다. 최근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이 활성화하면서 미스코리아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참가자가 많다. 한 후보는 "무명으로 나서는 것보다 그래도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달고 나가면 관심이 다르지 않냐"고 말했다.
신세대 미스코리아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자들의 성향과 꿈은 이전과 크게 다르다.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양이 대표적인 케이스. 경북대 의대에 재학중인 그는 올해 초 미국 MIT대와 하버드대에 동시 합격해 화제를 낳았다. 지난해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된 최윤영(21·캐나다브리티시대 심리학과 2학년)양도 수많은 연예계 진출 제의를 물리치고 공부를 계속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후보들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미스코리아도 금나나 양과 미스 서울 출신의 한의사 김소형씨였다. "예전에야 미스코리아가 돼 시집 잘 갈 생각을 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여성 누구나 전문직종을 원하는 시대잖아요. 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자신의 분야에서 확고한 비전과 실력을 갖춘 여성 리더가 되고 싶어요." 시애틀 진 이윤경(23)양의 당찬 출사표다.
외모가 선천적이라고요? 부단한 노력이죠.
이들은 '안티 미스코리아' 등 미인대회를 비딱하게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당당했다. 그동안 미스코리아 대회에 부정적이었다는 대구 선 김도연(20) 양은 "외적인 아름다움도 다른 재능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표현하고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자질 아니냐"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출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달고 다녔을 것 같은 이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움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불로소득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경기 선 김경아(21)양의 말. "조금만 소홀하면 금방 살이 찌는 만큼, 끊임없이 운동해야죠. 또 피부 관리도 중요하구요. 그리고 백치미? 이젠 안 통해요. 똑똑해야 한다구요. 이래 저래 모든 걸 갖춰야 미인이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잖아요. 그런데 노력없이 될 리가 있나요?"
뉴욕미 이은원(19)양은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미스코리아대회 참가 사실을 한국친구에게는 알리지 않고, 미국 친구들에게만 얘기했어요. 한국 애들은 조금 이상하게 보는 면도 있거든요. 미국 친구들은 모두들 좋아하면서 격려해줬어요. 걔네들은 미인대회를 편견없이 '쿨'하게 받아들이거든요."
밤 11시가 끝은 아니다.
밤 11시가 넘어 연습이 끝나도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친 것은 아니다. 몇 명이 숙소 밖에서 달리기를 하며 또 다시 땀을 뺀다. 기왕에 시작한 일,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다. 정말 욕심이라고 해야할까, 자부심이라고 해야할까. 미모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난다.
합숙기간이 차츰 늘면서 이들의 화두로 떠오른 것이 다이어트. 고된 합숙생활이지만 보름 정도 지나면 오히려 살이 4∼5㎏ 이상 쪄서 문제라고 한다. 운동량이 많다 보니 매 끼니를 꼬박꼬박 먹고 저녁에는 간식도 챙겨먹기 때문이라고. 대회 관계자는 "합숙이 강행군이다보니,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며 "결국 마지막 대회 날에는 평소 운동을 많이 해 온 건강한 친구들이 좋은 성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기흥=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올해 참가자 면면
2004년 미스코리아 본선에 올라온 58명은 18∼23세로 아직은 사회경험이 일천한 어린 나이이지만, 각자 다양한 자질과 특기, 경력을 자랑한다.
워싱턴 주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미스 시애틀 진 이윤경(23) 양은 2000년 고교 졸업 때 미국 대통령 클린턴 상을 받았고, 대학입학 후에도 빌게이츠 장학금, 자랑스런 아시안 학생상 등을 받은 재원. 고교 시절 한인 이민사 편찬 작업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교민유권자협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교민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힘쓰고 있다. 당초 서북미 미스코리아 대회 MC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가 "나는 미스코리아 감이 아니냐"는 오기가 발동해 참가했다고. 이 양은 "미스코리아 출신 여성 정치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당당한 신세대 미스코리아다.
경북대 영어교육과에 재학중인 대구 선 김도연(20)양도 정치지도자를 꿈꾸는 재원이다. 김양은 뛰어난 영어실력 덕분에 지난해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대학생 홍보사절단에 선발돼 1년 동안 일본 중국 영국 등 7개국을 돌았다.
전북 미 김나리(21·백제예술대 관광문화과)양은 최초의 미스코리아 출신 시인을 꿈꾸는 문학소녀. 김양은 올해초 대한문학의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해 실력도 인정 받았다.
쥴리아드 스쿨 1학년에 재학중인 뉴욕 미 이은원(19)양은 한국필하모닉 콩쿠르 최우수상,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 경력도 가진 실력파. 세계적인 비올라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중인 서울 진 김인하(19)양은 스위스 로잔느 국제콩쿠르 본선에 진출한 발레리나다.
일식, 중식, 한식 등 5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경기 선 김경아(21·경기대 관광학과)양의 꿈은 푸드스타일리스트. 대구한의대 산업디자인과에 다니는 경북 선 김태은(23)양은 애니메이터를 꿈꾸고, 경희대에서 재즈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대전 진 김혜연(22)양은 영화음악가가 목표다. 경북 진 하재원(22·한양대영미언어문화학부)양은 전통요리연구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회 관계자는 "예전에는 장래 희망으로 현모양처도 많았고, 전문직이래야 아나운서, 교사, 외교관 등으로 한정돼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관심분야와 전공이 무척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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