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덩이가 억세고 강해 보이지만, 조금만 달구면 그처럼 부드러울 수가 없어요. 쇠를 다루기 위해선 그만큼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이 필요합니다.”쇳대박물관의 최홍규(46) 관장. 30년 가까이 철물과 인연을 맺어왔지만, 단지 그를 철물장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부족하다. 차라리 ‘대장간의 아티스트’라고 하면 어떨까. 철물점이란게 시시껄렁한 가게로만 여겨질 때 그는 강남에서 ‘최가철물점’을 운영하면서, 이례적으로 제품을 직접 제작하며 자신만의 디자인을 아로새겼다. “단순히 철물만 파는 장사치가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철물 제품을 판다기보다, 나 자신을 판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뒷골목의 허름한 가게가 아니라, 카페처럼 화사하게 꾸며진 철물점. 그가 만든 철물 제품은 하나의 작품이었고, 철물점은 그의 작업실이었다. 불과 물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대장장이와 예술가, 그 선명한 경계에서 그는 우리의 고루한 편견을 깨왔는지 모른다.
지난해 말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문을 연 쇳대박물관은 바로 그런 그의 직업정신이 녹아있는 곳이다. 옛 대장장이의 주요 품목이었던 열쇠, 열쇠패, 빗장 등 3,000여점을 소장한 박물관은 또 한번 뒷통수를 친다. 자물쇠의 순 우리말인 ‘쇳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순박한 정서와는 달리, 박물관은 마치 귀금속 갤러리를 방불케한다. 단아하고 깔끔한 실내 공간과 은은한 조명 아래서 자물쇠는 마치 보석 같이 빛난다. 전시실도 그가 직접 꾸민 공간이다. “전시물이 보물처럼 보이기 위해 조명과 유리케이스를 사용했고, 건물의 동선 역시 보물을 찾으러 가는 루트와 비슷합니다. 어두운 좁은 복도를 지나 전시실에 이르는 거죠. 건물에 들어가자 마자 전시물이 보이면 제대로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든요.”
전시 공간 자체에도 철물 제품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녹아있다.
70여평의 전시공간엔 300여점 정도만 전시돼 있는데 언뜻 보기엔 비슷비슷한 자물쇠 같지만, 각기 다양한 뜻을 담고 있다. 게다가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수공업 제품이어서 따지고 보면 똑 같은 제품은 하나도 없다. 물고기형 자물쇠는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보관품을 잘 지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거북이형은 무병 장수를 상징한다.
특히 사대부 집안 딸의 혼수품이었던 열쇠패는 그동안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유물들. 갖가지 색채의 실과 다양한 주화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열쇠패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가장 화려한 사치품목이었다. 중국, 티베트, 아프리카 등 외국 자물쇠도 전시돼 국내 열쇠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쇳대박물관이 자리잡은 건물 자체도 눈에 띈다. 지난해 말 박물관과 함께 문을 연 4층짜리 건물로 설계는 건축가 승효상씨가 맡았다. 복도와 계단 구조가 독특하고, 자연광에 의한 빛과 그림자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건축물이다. 1,2층은 카페와 식당, 3층은 갤러리가 자리잡았고, 4층이 박물관 전시실이다. 최 관장은 앞으로 이 건물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돈을 벌기 위해 19살 나이에 처음 접했던 철물업. 춥고 배고픈 생활 속에서 최 관장은 당시 을지로의 작은 철물점 사장 밑에서 철을 알게 됐고, 인생을 배웠나갔다고 한다. 방황의 청년기에서 철물점은 그의 안식처였고, 철은 그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던 셈. 시뻘건 철덩이 속에 그는 옛 장인의 정신 그대로 자신의 신념을 새겨나갔다.
그의 관심은 박물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 조만간 대장간 학교도 열 계획인 그는 철물업을 단순한 기계작업이 아닌, 하나의 장인 문화로 만들어 가기 위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이용법
●가는길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방송통신대 쪽으로 500m 정도 직진. 한국문예진흥원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해서 100m 정도 더 가면 붉은 색 4층 건물이 나온다.
●시간 및 관람료 입장료는 개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휴관일은 없으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연락처 (02)766-6494. www.lockmuseum.org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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