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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51> 코리아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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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51> 코리아 디아스포라

입력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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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총무이며 평신도연합회장인 정연택(鄭年鐸) 장로로부터 세계코리아평신도대회 총재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 단체는 2,700여년 전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흩어진 민족이라는 뜻에서 '디아스포라'라고 불렀던 점에 착안, '코리아 디아스포라 총회'라고도 칭했다.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침을 받아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사정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다는 뜻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만주와 시베리아, 일본, 미주 등 세계 각지에 지금 700만명을 헤아리는 해외동포가 있다. 이들에게 종교적 신앙은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 힘이 되었다. 도산 안창호(安昌浩)가 1902년 미국에 첫발을 디딘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와 공립협회를 조직 운영한 것이나 이승만(李承晩) 박사가 하와이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것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만주에서도 김약연(金躍淵) 이상설(李相卨) 등이 최초로 세운 교육 기관인 서전의숙이 기독교 정신에 의해 설립됐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 동포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디아스포라 운동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91년에 정연택 장로가 앞장서 조직했는데 3년 동안은 공동대표제로 운영하다가 94년에 총재제로 바꾸면서 나를 초대 총재로 선출한 것이었다. 나는 시민운동에 분주해 교회도 열심히 다니지 못하고, 신앙생활도 철저하지 못했지만 그 취지에 공명했다. 이 운동의 중심인물은 각 교단 평신도 대표들인데 감리교의 유상철 회장, 장로교 통합측의 이익모 신형식 강원섭 장로, 침례교의 김성수 장로, 순복음교회의 고상권 장로, 장로교 합동측의 유경선 장로 등이고, 저명인사로는 역시 장로인 이영덕(李榮德) 전 총리, 정근모(鄭根謨) 박사, 이명박(李明博) 현 서울시장, 미국에 있는 박영찬(朴永燦) 목사 등이 참여했다.

코리아 디아스포라는 매년 각국을 돌며 그 나라는 물론, 가능한 세계 각국에 있는 신도 대표들이 모여 2, 3일간 회의를 하고 명소를 순례하는 연차대회를 계속해왔다. 나는 94년 이후 캐나다 호주 독일 중국 미국 등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했고, 국내에서도 제주 부산에서 개최된 회의에 참석했다. 매회 300∼400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연차대회는 그 대회 자체도 은혜롭고 성과가 있었으며 교인들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첫해 캐나다 대회에는 건국대와 한신대 총장을 지내고 토론토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존경하는 선배 정대위(鄭大爲) 목사가 설교 겸 신앙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올림픽을 치른 캘거리 밴쿠버 등을 순방하며 즐거운 관광을 했다. 특별히 레이크 루이스에서는 이른 새벽에 교인들과 함께 넓은 호숫가에서 아침 기도를 한 감동이 기억에 남는다. 95년 호주 대회 때는 호주기독교연맹 회장 김용만 목사 등과 호주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성대한 총회가 되었고 함께 간 이명박씨가 신앙간증을 했다.

96년에는 60년대에 우리 광부와 간호원들이 많이 가서 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총회를 가졌다. 60년대에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통역으로 독일을 왕래했던 백영훈(白永勳) 박사가 동행해 가난한 고국을 떠나 일자리를 구해 이민 간 광부 간호사들의 피땀과 용기로 점철된 회고담과 나라를 위한 공로를 들려주어 눈물을 자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알프스 몽블랑에 올라 서투른 한시를 한 수 지었다.

朝登夢浮朗(아침에 몽블랑에 오르니) 四圍奇雲嶺(사방이 기장(奇壯)한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였네) 景勝別仙界(경치가 하도 좋아 속세와 다른 별천지요) 喊高讚揚聲(소리 높은 함성은 모두 찬양하는 소리뿐일세) 吾主奈何心(우리 조물주께서 무슨 마음으로) 造化如此景(이렇게 좋은 경치를 만들었을까) 吾輩今朝來(아마도 우리가 오늘 아침 여기 오도록 하기 위해) 恩約闢初定(천지 개벽할 때 약정했던 것 아닌가)

이후 총재 후임으로 현 부총재인 정근모 박사를 추천했으나 그가 자꾸 사양을 해 지금도 내가 총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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