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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국가경쟁력?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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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국가경쟁력? 따져보자

입력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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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전후해 전개되던 보수―진보 논쟁은 최근 들어 제기되고 있는 경제위기론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듯하다. 재계를 중심으로 유포되고 보수언론이 부추기고 있는 경제위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한국은 중국, 대만 등 경쟁 국가에 추월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를 강조하는 소위 자유주의자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국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 기업의 세금 부담 경감, 규제 완화 등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한국의 소득 수준은 아직 복지국가를 실현할 역량이 부족하며, 이 정도의 복지예산도 국제 경쟁 시대에 과분하다고 말한다.현재와 같은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국가경쟁력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유연성, 기업 활동 규제 완화, 사회복지 지출 경감 등만을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도 남는 나라다.

먼저 복지예산을 살펴보자. 정부 예산 중 사회보장 및 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2년 현재 17.2%,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8.7%이다. 정부 예산의 50% 가까이를 복지 부문에 지출하는 독일이나 스웨덴과 비교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복지예산이 22% 가량을 차지하는 멕시코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이다. 복지예산이 넘쳐서가 아니라 부족해서 문제인 나라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또한 이미 충분히 실현되었다. 2003년 8월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 1,415만 명 중 55%인 783만여 명이 비정규직이다. 전체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해고와 고용을 반복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이 정규직의 51% 수준이라고 하니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선호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몰려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국가경쟁력의 원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에 따르면 창의와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적 환경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며, 그 환경은 숙련된 노동과 안정적 하부구조에 달려 있다. 하부구조는 단지 물리적인 기반시설의 확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안정적 하부구조의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전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개방 경제를 통한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사회적 안전망이 있기는 한 것인가? 대한변협의 자료에 따르면 최소 300만 명이 넘는 실질빈곤층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자살 등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보험급여가 정지된 가구가 139만 가구에 달한다. 국민연금 기여금을 내지 못해 복지 혜택에서 소외된 인구는 546만 명이다. 산업재해자는 지난해보다 20.2% 늘어난 4만6,000여 명, 같은 기간 산재사망자도 19.3% 늘어 1,482명을 기록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어린이 사고사망률은 10만 명 당 25.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었으며, 학대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 부의 집중화 현상 또한 전혀 개선되지 않고 않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토지 가격으로 따져볼 때 땅 부자 5%가 전국 개인 소유 토지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전체 가구 가운데 3가구 중 1가구는 땅이 한 평도 없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사회안전망 확보는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용이 뭔지도 알 수 없는 상생의 정치를 되뇌기 전에 사회적 약자들도 상생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시급한 시점이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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