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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선원, 하안거 시작 결제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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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선원, 하안거 시작 결제 법회

입력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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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10시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 스님들이 비장하면서도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대웅전으로 모여 들었다. 불교의 여름 수행인 하안거(夏安居)를 위한 결제 법회를 갖기 위해서다. 결코 쉽지 않은 하안거를 끝까지 마치겠다며 마음을 다진 스님들은 운문선원, 고불선원 등 백양사 선원에 모여 본격적인 하안거에 들어갔다.

안거란 전국의 수행승이 외부와 단절한 채, 여름과 겨울 각각 석달간 수행정진에만 전념하는 불교의 행사. 원래는 석가모니 당시 인도의 유행(遊行) 수행자들이 우기에 땅 속에서 기어 나오는 작은 동물을 밟지 않기 위해 잠시 유행을 중단했던 것에서 유래됐다. 같은 시각 조계종의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등 전국 사찰의 선방, 토굴 등에서도 2,500여명의 수님이 동시에 수행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백양사는 수행 희망자가 줄을 잇는 인기 수행처. 스님들은 백양사 선방에 방부(房付·안거 참가신청)를 하기 위해 수년 전 예약을 하는 등 경합을 거쳤다. 백양사 출신의 선지식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산 진묵 백파 학명스님을 배출했고, 그 뒤로도 용성 만암 인곡 고암 운봉 등 고승을 배출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지난해 말 앉은 채 열반해 사부대중을 놀라게 한 서옹 스님은 고불총림 방장을 지냈고, 현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 역시 백양사에서 공부했다.

하안거 동안 백양사 선방에서 정진하는 수행승은 22명. 백양사 천진암에서 수행하는 비구니 스님까지 합치면 30명이 넘는다. 하안거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한다. 간단한 새벽 예불을 드리고 2, 3시간 정진한 뒤 5시30분부터 30분 동안 아침 공양,.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정진한 뒤 점심 공양. 잠시 숨을 돌린 뒤 오후 2시부터 다시 정진한다. 오후7시 저녁 예불과 정진 뒤, 오후 9시나 10시께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친다.

고불총림 방장 수산(壽山·82) 스님은 이날 "맨손으로 한 칼을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금강의 보검을 잡고 도깨비를 쓸어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음이로다...푸른 하늘이 벼락을 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라는 하안거 결제 법어를 내렸다. 스님은 또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고 개혁하며 사심없이 수행 정진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수행자 뒷바라지를 총괄책임 지는 지선스님은 "오래 정진한다고 해서 깨달음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며 "스님들의 연세와 건강상태 등을 고려, 하루 수행 시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시간을 늘려도 된다"고 말했다. 지선스님은 "스님이 공부하겠다며 작정하고 모이는 게 안거"라고 하면서도 "진심으로 공부하고 정진하겠다는 스님은 안거 기간동안이거나 아니거나, 눕거나 앉거나 서거나, 한국에 있거나 미국에 있거나, 늘 마음 속으로 화두를 붙잡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정진하는 스님상을 설명했다.

/장성=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방장 수산 스님

"화두를 들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합니다. 화두와 내가 하나가 돼야 제대로 된 공부, 제대로 된 정진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정진하더라도 허송세월만 보내는 것입니다."

4월 중순 전남 장성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 방장으로 추대된 수산(壽山·82·사진)스님은 하안거에 들어가는 수행승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지난해 말 입적한 서옹스님의 뒤를 이어 방장이 된 수산스님은 운문선원, 고불선원 등 고불총림내 선원에서 수행에 들어가는 스님들이 특별히 백양사의 수행 전통을 이어주길 희망했다.

백양사는 일제 때부터 선학, 율학, 염불 등 삼학(三學)에 밝아 당시 스님들이 '모범 백양'으로 부를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상당수 사찰의 주지를 대처승으로 바꿔 사찰의 분위기가 느슨해졌을 때도 백양사는 끝까지 비구 스님이 주지를 맡아 청정한 수행 환경을 유지했다고 스님은 말했다. 그 가운데서도 스님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수행 가풍은 언행일치다. "말만 하고 실행이 없으면 잘못입니다. 잘못을 알고 불법을 어기지 않는 게 바로 언행일치이지요."

스님은 하안거에 들어가는 수행승들이 이 같은 자긍심을 바탕으로 공부에 정진하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는 '참사람운동'의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서옹 스님이 주창한 참사람운동은 한 마디로 사람답게 살자는 운동. "콩 한 조각이라도 쪼개서 나눠 먹는 것, 제 혼자 감투 쓰고 잘 살겠다며 다른 사람을 짓밟지 않는 것, 화합하고 서로 위하며 부모를 섬기고 사람 도리를 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참사람 운동입니다."

수산스님은 스님을 가리키는 한자의 '승(僧)'은 '먼저(曾) 사람(人)이 돼야 한다'는 뜻이라며 수행승에게 사람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당부했다. 192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38년 백양사에서 법안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한 스님은 부안 개암사와 태백 흥복사 그리고 백양사 주지를 거쳐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영광 불갑사 조실을 지냈다.

/장성=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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