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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7>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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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7>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1983년

입력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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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오혜성. 1960년 청주 태생. 어머니는 일찍 죽고 아버지는 술주정꾼. 황남초 4학년때 최엄지의 권유로 야구 시작. 졸업 후 엄지는 서울로 전학을 가 서울 화성고의 천재타자 마동탁의 애인이 됨. 83년 7월31일 프로야구 서부구단에 입단. 계약금 1,000만원에 연봉 1,000만원. 한때 동탁과 자신의 사이에 끼어 들지 말라는 엄지의 부탁으로 야구를 포기하려 했다.84년 외인구단 탄생. 1루수 까치, 투수 조상구, 지명타자 최관, 4번 타자 백두산, 유격수 최경도. 5명은 지옥훈련 후 최강의 멤버가 돼 서부구단에 합류하고, 프로야구 후기리그 50연승 신화를 달성. 그러나 코리안시리즈마저 4연승을 거두기 직전, 엄지가 남편인 마동탁을 위해 져달라고 부탁하자 동탁의 직선타에 일부러 맞아 게임을 포기하고, 엄지는 자책을 느껴 정신병자가 됐다. 85년 6월,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정신병원에 요양중인 엄지와 재회.

2004년 5월30일

난 앞을 못 본다. 지팡이 없이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20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한때 몸 담았던 프로야구는…,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지금 내 옆에는 엄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일 마동탁이 찾아온다고 했다.

2004년 5월31일

마동탁을 만났다. 그놈 안경 낀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그놈은 여전히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혜성,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난 예전 그대로네. 체격이나 외모, 모두. 지기 싫어 하는 성격까지도, 하하. 자네의 그 까치머리도 여전하군. 그래, 엄지씨는 잘 있나? …. 결국 자네가 이겼네. 하지만 결코 내가 졌다고는 생각하진 않아. 자넨 자네가 원하던 바를, 난 내가 원하던 바를 서로 차지했을 뿐이지. 엄지씨를 차지하니, 그래, 행복한가?"

난 결코 마동탁, 그놈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엄지의 증세가 심해졌다. 날 알아보지 못했다.

2004년 6월1일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강한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것일까. 지금은 고인이 된 손병호 감독이 늘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있다. 강하다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을 많이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는 말했다. 자신이 외인구단을 만든 것은 힘이 없어서 언제나 당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역사에 굴욕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또 다시 천황의 제단에 강제 참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선, 바르고 착하게만 살기에 앞서 무엇보다 강해야 되는 거라고.

외팔이 최관, 키 작은 최경도, 혼혈아 하국상, 둔한 백두산, 그리고 나 오혜성. 외인구단 5명은 모두 불구였고 약자였다. 그 지옥과도 같은 사지(死地)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상경한 날, 남들은 비아냥거렸다. 누구는 왕년에 눈물 젖은 빵 한번 안 먹어 봤냐고? 우리는 외쳤다. 당신들은 죽어본 적 있냐고.

그랬다. 우리는 약자였으되 강자였다. 1984년 여름 창단한 외인구단은 그 해 프로야구 후기리그 50연승, 코리안 시리즈 3연승을 거두며 전승신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관중들은 외인구단에 열광했다. 시대의 아픔을 잊으려 했다. 피로 탈취한 신군부의 군화 아래서 사람들은 신음했고, 그런 연약한 패배자의 입장에서 외인구단의 강함을 사랑했다.

2004년 6월2일

내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너, 엄지 때문이었다.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어 보는 게 어떻겠니?"라는 네 편지 한 통으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니까. 너는 신이었고 네 편지는 성전(聖典)이었으니까.

내가 야구를 그만둔 것도 엄지, 너 때문이었다. 코리안 시리즈 마지막 4차전에서 관중들은 외인구단의 마지막 승리를 갈구했지만, 외인구단은 졌다. 내 고의 실수였다. 나는 비웃었다. "이까짓 승부가 무슨 소용인가. 엄지를 독차지했다는 것만으로 네 놈이 이긴 건데."

마동탁이 친 직선타에 맞아 시력을 잃었고, 엄지는 이런 내 모습에 정신병자가 됐다. 그리고 네 놈은 엄지와 이혼했다. 넌 원래 그런 놈이니까. 어릴 때부터 누구하고 무엇을 하건 지고서는 잠을 못 이룬 게 네 놈이니까.

2004년 6월3일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 엄지에 대한 나의 사랑이 광기 이후에 얻은 상처투성이라고 욕해도 좋다. 외인구단은 결국 자신들을 소외시킨 강한 자들의 습성을 그대로 복제했다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누가 엄지를 악녀(惡女)라 욕하는가. 두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었다고? 청순 가련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의 부와 행복과 성공을 위해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은 살로메라고? 후후, 까불지 마라. 누구든지 엄지를 울리거나 욕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현세(48)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0년대 한국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83년 초 제1권이 나온 후 84년 말 제30권으로 완결될 때까지 모두 100만권이 팔렸다. 86년에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라는 영화(최재성 이보희 주연)로 만들어져 40만명이 봤다. 까치의 말에서 따온 정수라의 노래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도 크게 히트했다.

과장된 굵은 선, 앵글의 급격한 전환 등 만화 고유의 매력 외에도, 까치둥지 같은 머리의 주인공 오혜성의 힘이 컸다. 오혜성의 모델은 작가의 경주중·고 동기동창인 영화배우 조상구. 외인구단은 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연패를 거듭했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델로 삼았다.

작가는 까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슬플 때는 눈동자에 별이 반짝이는 순정체, 화가 날 때는 코에 주름까지 잡히는 극화체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양한 얼굴을 독자가 계속 까치로 알아보게 하기 위해 물방울 같은 머리카락과 각진 얼굴을 만들었다."

■ 한국만화의 남자 주인공

까치만 있었던 게 아니다. 1954년 한국일보 창간 이후 2004년까지 50년 동안 한국만화에는 수많은 남자 주인공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대를 대변했고 독자와 소통했다. 그들은 소영웅이었고 삶의 위안이었으며 당대의 강렬한 아이콘이었다.

브랜드 개념의 캐릭터로 처음 기억되는 것은 1950년대 중반 '학원' 잡지에 연재된 김성환의 '꺼꾸리군과 장다리군'. 청소년용 단편만화 모음집이었던 이 만화는 장신과 단신의 두 주인공을 대비시킨 명랑물로 성공했다. 77년에는 석래명 감독, 이승현 강정훈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러나 독자들 마음에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 남자 주인공은 역시 라이파이다. 60년 부엉이문고에서 제1부 '정의의 사자'가 나왔던 산호의 '라이파이'는 우리나라 고유 브랜드를 가진 최초의 SF만화. 해골요새를 본부로 삼아 검은 테 안경가면을 쓴 주인공 라이파이는 60년대 만화방을 달군 주인공이었다.

김종래의 '황금가면', 임창의 '땡이' 시리즈, 이근철의 서부 전투만화에 나온 주인공도 기억할 만한 60년대의 남자들. 특히 "으잉!"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쌍꺼풀 진 길쭉한 눈을 흘기는 이근철 만화의 캐릭터 이미지는 지금도 선명하다.

70년대는 역시 이상무의 독고탁과 길창덕의 꺼벙이 시대. 깔끔한 그림체와 훈훈한 이야기의 독고탁 시리즈는 70년대 후반까지 그를 인기스타로 군림케 했다. '비둘기 합창' '아홉 개의 빨간 모자' 등에 나온 독고탁 만큼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진 주인공도 드물다. 머리에 땜통 자국이 있는 천하의 장난꾸러기 꺼벙이도 한국만화의 대표 캐릭터. 초등학교 시절 만화 좀 그린다는 지금의 30대는 무조건 꺼벙이를 수백 번 그려야 했다. 박수동의 고인돌, 강철수의 발바리(김달수)도 성인 독자를 울리고 웃겼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문을 연 80년대 한 켠에는 허영만의 이강토가 버티고 있다. 80년대 중반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로 읽혔던 '오! 한강'은 평범한 소작농의 아들 강토의 성장기. 월북한 후 북한에서 사회주의 작가로 성장한 강토의 이야기는 당시 학생 운동권에서도 이데올로기 문제를 제대로 다룬 작품으로 평가됐다.

이같이 나름대로 법칙을 갖고 진화를 해오던 한국만화는 80년대 말∼90년대 초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라는 강력한 일본만화 2권의 공습으로 완전 초토화된다. 겨우 정신을 수습해 무대에 등장한 주인공이 남궁건.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의 이 고등학생은 일본만화 스타일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100만부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완벽한 외모와 착한 마음씨로 여학생들로부터 진짜 천사가 아닐까라는 의혹을 받았던 '언플러그드 보이'(천계영)의 현겸,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도망칠 궁리부터 하는 허무맹랑한 '열혈강호'(양재현)의 한비광도 90년대 스타. 학원가에 짱 신드롬을 일으킨 '짱'(임재원)의 현상태, 댄스 열풍을 불러온 '힙합'(김수용)의 성태하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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