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제공동조사서 확인썰물 때 해안가 저 멀리까지 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하얀 깃털로 몸치장한 저어새 무리가 야트막한 물길을 따라 분주히 거닐고 있었다. 주걱 모양으로 길게 쭉 뻗은 부리를 밑으로 내린 채 얕은 물 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저어새'라는 이름에 딱 들어맞는다. 백로보다는 짧고 굵은 다리, 길쭉한 검은 부리와 검은 뺨, 번식기에 나타나는 눈부신 오렌지색 댕기깃과 가슴띠, 넓은 날개를 펴며 뻘 속을 팔짝거리듯 뛰기도 하고 느릿느릿 걷기도 하는 모습은 천연기념물이라는 특별한 매력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5개국에서 모인 저어새 국제공동조사단이 2일 찾아간 곳은 인천 강화도 갯벌과 한강 하구 지역. 전날 인천에서 배를 타고 남방한계선 인근 석도와 비도를 찾았던 조사단은 이틀째 저어새 가족을 따라 강화도 인근 해안을 훑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저어새는 개체수가 적어 일정한 서식지를 따로 지정·보호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반도는 저어새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며 봄부터 가을까지 대를 잇고 살아가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라는 게 공동조사에 나선 김수일 한국교원대 교수의 설명이다. 전세계에서, 그것도 동아시아지역에서만 1,2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조류인 저어새에게 우리나라 서해는 세계 최대 번식지이자 고향인 셈이다. 대만 일본 베트남 등에서 수백마리가 발견되지만 이는 월동하는 것일 뿐 이들이 다시 돌아와 알을 낳고 번식하는 곳은 서해 비무장지대 안 무인도나 한강 하구이며 종족을 키우는 것은 서해 갯벌이다.
올해 처음 국제 공동조사에 나선 5개국 연구진은 석도에서 올 봄 알에서 부화한 새끼 저어새와 어미 저어새 20여 마리를 관찰했고 한강 하구 유도에서 저어새 둥지 27개를 발견했다. 대만국립청쿵대 왕지앙핑 교수는 "10년 넘게 저어새 연구를 해왔지만 알을 낳는 번식지를 직접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새끼 저어새들의 생태가 아주 건강해 보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본 저어새보전행동네트워크의 와타루 오니시 대표는 "저어새는 동아시아 생태계의 보석이라고 할만큼 그 존재와 가치가 소중하다"며 "아시아의 갯벌과 하구생태계의 건강성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도 생생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번식기 저어새는 해안가에 둥지를 틀고 해안인근 저수지의 민물고기나 벌레를 잡아 새끼들에게 물어다준다. 저어새 새끼들은 염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수지나 논이 농약이나 오폐수로 오염되면 저어새는 2차 감염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지난해 대만에서는 먹이가 부족한 저어새들이 인근 양어장으로 먹이를 찾아가 보톨리늄이라는 식중독균에 감염된 물고기를 먹어 71마리나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간척과 해양오염으로 보금자리인 갯벌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저어새에게는 큰 위협이다. 환경운동연합 습지보전위원회 김경원 위원은 "한국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해안가 논과 강 하구,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철새라는 기록이 있었는데 반세기 만에 세계적으로 몇마리 남지 않은 멸종위기 조류가 됐다"며 "70년대 이후 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인해 해안과 가까운 섬과 섬이 이어져 저어새는 점점 그 보금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번식지인 서해 무인도에 낚시꾼 배를 통해 들어온 쥐, 고양이 따위는 땅에 둥지를 틀고 번식·서식하고 있는 저어새에게 큰 위협이 된다. 산란 때 3개 밖에 알을 낳지 않는 저어새는 번식시기를 놓치거나 괭이갈매기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알을 빼앗기게 되면 재산란과 번식이 쉽지 않다.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저어새 보호라는 한가지 목적을 위해 5개국에서 모인 학자와 환경활동가, 정부 대표 등 100여명은 4일 환경운동연합 주관으로 이번 공동조사 결과를 토론하고 '생명의 날개, 평화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2004 동아시아 저어새 보전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을 갖는다.
/강화=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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