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별 볼일 없는 여자 태영. 아버지를 도와 서울 변두리의 작고 낡은 영화관을 경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그녀는 최소한의 경비만 들고 파리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학교 다니랴, 생활비 쓰랴, 집세 내기도 빠듯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최고급 아파트에 드나들며 청소와 음식을 해 주는 것.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은 한국 남자. 태어난 순간부터 수 백억원 대의 재산을 타고난, 자동차 재벌집 2세인 기주다. 우연히 기주와 동행해 상류층의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 둘
2년제 대학의 레크레이션 학과를 졸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변변한 직장도 없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는, 그래서 집에서는 엄마의 구박에 시달리는 역시나 별 볼일 없던 여자 유빈. 어느날 '우연히' 들른 액서세리 가게에서 응모권이 일본 북해도의 리조트 2박3일 숙박권에 당첨된다. 일본 여행지에서 그녀는 정말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가 국내 굴지의 리조트 재벌집의 외동아들 권희이다. '우연히' 황태자 권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것을 시작으로 갑자기 일이 술술 풀린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리조트에서 꿈에 그리던 G.O(리조트 직원)로 일하게 되고 2세 수업차 역시 그곳에서 일하게 된 권희, 그의 이복동생 승현과 삼각관계에 빠진다.
순진무구한 신데렐라, 결함 있는 왕자
이 두 이야기는 각각 6월12일, 16일 첫 방송되는 SBS 주말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MBC 수목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의 줄거리. 평범한 여자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어마어마한 갑부집 아들임을 털어 놓는다→ 여자는 잠시 고민하고, 남자 집안에서는 극구 반대한다→ 둘은 온갖 소동과 시련을 이겨내고 해피엔드를 맞는다. 드라마가 사랑하는 상투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공식이다. 특히 '파리의 연인'은 줄리아 로버츠,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모티프를 따왔음을 공개적으로 밝혔을 정도로 명백히 상투적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단골커플인 순진하고 발랄한 여자와 돈은 많지만 그늘 지고 결함 있는 왕자의 결합도 여전하다. '파리의 연인'의 태영(김정은), '황태자의 첫사랑'의 유빈(성유리)의 공통점은 돈도 없고, 별로 잘난 것도 없지만 밝고 쾌활하다는 것. 반면 그들이 만날 왕자들은 가슴 속 그늘이 깊은 이들이다. 태영의 파트너 기주(박신양)는 잘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남들 이목에 신경써야 했고, 아버지는 자신을 사업을 물려 받을 도구로만 여긴다. 게다가 그에게는 정략 결혼한 여자와 이혼한 아픔이 있다. 유빈(성유리)의 남자인 권희(차태현)는 한 마디로 '망나니'.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빠 애정결핍에 시달린다. 승현(김남진) 역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성공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해외에서의 러브스토리, 여름에 '딱'?
상투적인 이야기가 배경만 바꿨다. 해외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은 어떨까? 해외 여행지를 무대로 했을 때 '우연한 만남'이라는 극적인 장치는 힘을 발휘해 여주인공은 속물 이미지를 벗어내고, 그들의 사랑은 더더욱 운명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한강변을 거닐다 왕자님을 만났다'보다는 '파리 세느 강변을 거닐다 우연히 한국남자를 만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바로 왕자님이었다'가 몇 백배는 로맨틱한 게 사실. '파리의 연인'의 신우철 PD는 "파리는 로맨틱한 사랑의 시작을 그려내는 데 가장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포장 바꾼 신데렐라 이야기가 잇따라 선보이는 것은 계절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머리 아프지 않고, 볼 것 많은 여름 드라마로 적격이라는 것. '파리의 연인'의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는 과장과 판타지가 가미되어야 하지 않나요.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카드값 걱정 안하고, 남편이 어디 가서 술 먹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제작하는 이관희 PD는 "바캉스 시즌에 맞춘 밝은 느낌으로, 휴가 못 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드라마"고 밝혔다.
화려한 겉모습, 알맹이는 글쎄
드라마가 해외로케를 욕심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대작 드라마가 아닌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해외 로케분이 대거 투입된 여름용 드라마는 해외촬영 열풍과 외주제작시스템이 만들어 낸 합작품. '발리에서 생긴 일'(SBS)로 휴양지 발리의 주가가 뛴 것처럼, 자체 제작보다는 협찬이 수월한 외주제작사는 홍보효과를 노린 각 업체의 도움으로 해외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일본 삿포로, 남태평양 타히티 등에서의 촬영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황태자의 첫사랑'의 경우 휴양지 체인인 클럽메드에서 장소와 제작진의 숙식을 제공한다.
협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총 3회에 걸쳐 파리가 등장하는 '파리의 연인'의 경우는 촬영의 어려움이 컸다. 촬영 당시 파리에서 영화 CF 등을 촬영하고 있던 팀만 해도 400여 팀. 퐁네프 다리, 몽마르뜨 언덕 등 명소에서 촬영을 위해서는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했고, 다른 팀과 겹치면 촬영이 불가능했다. "물가가 비싸, 제작진의 한끼 밥값만 이, 삼백만원이었다"는 투덜거림이 이해가 간다.
신데렐라 이야기, 게다가 외국을 배경으로 볼거리도 풍성한 두 드라마는 제작진의 요구대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로 치자면 더 없이 좋다. 하지만 포장만 화려한, 알맹이 없는 이야기라면 곤란하다. 볼거리도 가득하고 구성도 신선한 새로운 여름 드라마일지 어디 한번 기다려보자.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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