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일부에 권력주의적인 언론억압 사상이 상당히 퍼져 있다."일본의 대표적 민간방송사인 니혼(日本)TV의 우지이에 세이이치로(氏家齊一郞·78·사진) 회장이 지난달 3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정부의 언론정책을 평가한 말이다.
일본민간방송연맹 회장도 지냈던 우지이에 회장은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난달 22일 평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총리관저가 보도내용을 문제 삼아 니혼TV 기자의 방북 동행취재를 한때 거부한 사건을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니혼TV는 지난달 16일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해결을 전제로 북한에 쌀 25만톤을 지원키로 최종 조정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오자 고이즈미 총리의 최측근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총리비서관이 니혼TV에 "방북을 방해하려는 거냐"며 "취소치 않으면 동행취재를 불허하겠다"고 항의했다. 그는 또 동행취재 허용을 대가로 취재원 공개를 요구했으나 니혼TV가 거절하자 외무성 등에 "니혼TV를 빼고 잡지사를 넣어라"고 지시했다.
총리관저는 이 보도가 북한에 미리 일본의 협상카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국내 여론까지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격앙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오카노 가오루(岡野加穗留) 메이지(明治)대 학장 등 지식인들이 "고이즈미 정권이 장기집권의 자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커졌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진화에 나서 막판에 니혼TV 기자에게 동행취재가 허용됐다.
우지이에 회장은 "개인정보보호법 이래 권력주의적 언론 억압사상의 흐름이 조금씩 늘고 있지 않나 하고 느낀다"고 우려했다. 이 흐름이 2001년 이후 정부가 언론 규제 조항을 담은 일련의 법률안을 냈다가 언론계와 야당의 반대로 포기해온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라며 "보도 자유는 기득권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한 것이라는 의식을 절대 잊지 않고 젊은 기자들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히에다 히사시(日枝久) 민방연합회 회장도 지난달 20일 "보도내용을 이유로 한 동행취재 거부는 언론·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일"이라고 비난했고 후지TV와 TV아사히 등 니혼TV의 경쟁사 최고경영자들도 정례 기자회견에서 모두 정부의 태도에 우려를 표시했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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