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비밀도 아닌 '국민연금 8대 비밀'이 네티즌 사이에 일파만파로 번져나가 마침내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8대 비밀은 주로 유족연금의 중복수급 제한과 국민연금 장기체납자에 대한 압류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국민연금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식하고 단순한 해명에 급급하다가 오히려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을 더욱 더 증폭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8대 비밀은 국민연금에 대해 표출된 국민정서의 일부에 불과하고, 심층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정체성과 신뢰성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이러한 국민여론에 기름이라도 붓겠다는 것인지 지역가입자의 연금보험료를 7%에서 8%로 인상한다고 통보한데 이어,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OECD국가 중에서 인구노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제도의 정착은 매우 중요한 국가 과제라 할 수 있다. 지금 네티즌들은 성급하게 국민연금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보다 일찌감치 고령사회에 진입한 경제 선진국 어디를 살펴보아도 공적연금제도가 없는 국가는 없다는 점 하나만 보아도 공적연금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오만과 객기에 가깝다. 말없는 다수의 국민은 공허한 국민연금 폐지 주장보다는 그 동안의 불안과 불신을 한번에 날려 보낼 수 있는 시원한 대안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문제점은 장기적인 재정불안, 광범위한 연금 사각지대의 존재, 적립기금운용에 대한 불신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연금재정은 현재의 저부담·고급여의 불균형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 2047년경에 적립기금이 완전히 고갈된다. 또한 국민연금은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노인계층의 소득보장 문제는 외면하고 있고, 국민연금 가입대상자 1,700만 명중 600만 명 이상이 저소득 등으로 인하여 국민연금 보험료를 불입하지 못하는 등 연금 사각지대를 안고 있다. 현재 120조원 가량의 적립기금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잘 운용하여 국민들의 연금보험료 부담을 덜어 줄 것인가도 문제다.
정부는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금보험료를 9%에서 15.9%까지 상향조정하고, 연금급여는 40년 가입 기준 60%에서 50%로 하향조정하는 재정안정화 방안을 내놓았고, 연금사각지대 해소 대책 마련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장기 연금기금운용 전략방안을 수립하는 등 다양한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정부의 재정안정화방안은 기금고갈시점을 2047년경에서 2075년경으로 연장시키는데 불과한 미흡한 대안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혈세로 수천억원의 적자보전을 하고 있는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등은 그냥 두고 국민연금만 개혁한다고 해서야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더욱이 연금 사각지대는 현행 국민연금 체계로는 해결이 어렵다.
이제 인구고령화, 저출산, 가족해체, 무한경쟁으로 표현되는 변화무쌍한 21세기에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공적연금 시스템으로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행의 공적연금 체제를 모든 국민이 노후에 필요한 소득의 최소한을 보장하는 사회보장 성격인 1인 1연금의 기초연금제도와, 안정된 노후준비가 필요한 국민을 위한 저축성격의 소득비례연금으로 구분하는 다층적 연금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혁 방안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대승적 차원의 국민합의를 모색하여야 할 시점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금융보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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