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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사랑 베푼 독일의 참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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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사랑 베푼 독일의 참스승

입력
200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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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참 스승을 만난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는 독일 뮌스터대 유학 시절에 만난 클레싱어 교수가 그런 분입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개발 아카데미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 동남아시아 학생들을 볼 때면 그 분을 떠올리며 나도 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스승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하곤 합니다.1980년의 일입니다. 당시만 해도 독일에는 한국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너희 나라에도 눈이 내리냐? 눈 처음 봤지?"라고 놀림 비슷한 말을 듣고 지내던 시절, 클레싱어 교수는 외국인 학생을 평등하게 대우하며, 나를 위해 특별히 한국 공부까지 하신 분입니다. 연구 평가는 철저하게 능력 위주여서 히피머리에 나막신 딸그락거리는 일본 학생 우도도 많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라 불렀습니다.

나의 연구 결과에 매우 흡족해 하신 클레싱어 교수는 독일 공무원 신분의 조교 자리를 주셨습니다. 그러자 뮌스터 시청 외사과에서 저를 불러 목적이 공부냐 취업이냐 하고 심하게 추궁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명쾌한 편지로 그들의 잘못을 엄히 꾸짖었습니다. "내가 이 한국 학생에게 조교 자리를 준 이유는 이 사람이 장차 귀국해서 학생을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조교로서 교육 경험을 쌓는 것이 이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다. 그는 교육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당장 강제출국시킬 것처럼 서슬이 퍼렇던 공무원들은 짧은 식견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교수님은 어렵기로 소문난 학부 일반화학실험실 조교를 맡겼습니다. 70명 정도의 독일 학부생이 실험을 하는 4시간 동안 기술도 지도하고 질문에도 답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실험 중에 자꾸 라이터를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슨 담배냐. 라이터를 쓰면 안된다고 하는데도 자꾸 라이터, 라이터 하여 화를 냈더니 자기가 가서 갖고 왔습니다. 사다리였습니다! 사다리가 독일어로 라이터였습니다. 인화물질이며 독극물이 많은 실험실 조교 생활은 큰 경험이 되었습니다.

클레싱어 교수는 한국의 수준을 면밀히 살펴보시고 박사 논문을 쓸 때도 귀국해서 활용도가 높은 분야를 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 분의 이론유기화학 분야 중 가장 실용적이었던 핵자기 공명 분광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귀국 후 그 활용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선생님은 늘 연필만 쓰시고 그것도 절약 차원에서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작게 글씨를 쓰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독일인의 절약정신을 보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독일 사회에서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독토르 파터' 즉 '박사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를 클레싱어 교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KIST에도 많은 외국인 학생이 있습니다. 말과 관습이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레싱어 교수를 생각하며 '나도 스승님 같이 기억에 남는 선생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늘 되새깁니다. 선생님, 멀리서나마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조정혁 KIST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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