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 진 의원이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한미 동맹 관련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라 하겠다. 박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은 한국의 견해를 더 이상 경청할 필요가 없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으며 "한국을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민감한 전략정보 공유를 꺼리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예 "한국이 미국의 레이더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있다"고까지 우려를 표명했다.우리의 안보 현실로 보아 이러한 전언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관련 당사국 간에 상호 협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고 국익의 상호보완성을 극대화시켜 나가는 것이 동맹의 논리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망할 때, 박 의원이 전한 미국 측 인사들의 발언은 다분히 고압적이고 일방주의적이라 하겠다.
지난 50년간 한미동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한미 동맹이 심각한 균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 일차적 원인은 위협 인식의 간극에 있다. 미국은 아직도 북한과 중국을 주요 위협 대상으로 설정, 한국과 일본과의 양자동맹을 통해 이를 관리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대북 위협 인식은 크게 완화되고 있으며 중국 또한 위협보다는 협력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히려 재무장한 일본을 잠재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미국이 주요 위협으로 여기는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공감대도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연합방위 태세와 군사협력의 제도화 부분에서도 문제가 예상된다. 미국은 주한 미군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한미 연합 전력까지도 신속기동군의 하나로 일단 유사시 세계 전역에 동원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주한 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 차출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주한 미군이 대북 억제세력으로 고정되기를 희망하는 동시에 연합 전력의 신속기동군화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와중에 용산 기지 이전 문제가 시민 저항으로 차질을 빚게 되면 한미 동맹의 제도적 기반에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시민사회의 지지 기반 없는 동맹이란 상상할 수 없다. 아직도 한미 동맹의 지속을 선호하는 한국민이 대다수이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미 감정이 증대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비례하여 미국 내 여론지도층의 반한 감정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이 같이 반미, 반한 정서가 증대되는 가운데 강력한 한미 동맹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동맹의 미래지향점에 있어서도 한미 간 차이가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국과의 양자 동맹을 통해 대북 억제 및 대중 견제에 동맹의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한미 양자 동맹을 활용하여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은 물론이고 동북아 집단방위체제 또는 집단안전보장체제 등 다자간 안보 협력을 구축하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미 동맹 간의 시각차는 크다. 이러한 시각차를 피차 겸허히 인정하고 상호 협의를 통해 좁혀 나가는 것이 동맹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된다.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정 관리라는 공동의 이익과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동북아 안보 공동체 구축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감안할 때 이러한 노력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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