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 쌓인 눈에 비친 달빛이 대낮처럼 밝다. 달빛이 방 안에까지 훤히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자리에 일어나 마주앉는다."
지난해 12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겠다며 10년째 이끌던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회주(會主·법회를 주관하는 스님)와 길상사 회주 자리를 내놓고 행선지를 밝히지 않은 채 강원도 깊은 산으로 들어간 법정(法頂·72) 스님이 산문집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 발행·9,800원)을 냈다. 1999년 '오두막 편지' 이후 5년 만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은 2000년부터 매월 '맑고 향기롭게' 회지에 썼던 글 40편을 모은 것으로, 스님이 자연 속에서 지내며 얻은 사유의 세계를 담고 있다. 산문집은 자연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품에 묻히고자 하는 스님의 생활을 보여준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구름이 일고, 안개가 피어 오르고, 강물이 얼었다가 풀리는 것도 또한 자연의 무심이다. 이런 일을 그 누가 참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자연 앞에 무심히 귀를 기울일 뿐이다." "앞뒤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한바탕 쓸고 닦아냈다. 아침나절 맑은 햇살과 공기 그 자체가 신선한 연둣빛이다. 가슴 가득 연둣빛 햇살과 공기를 호흡한다. 내 몸에서도 연둣빛 싹이 나려는지 근질거린다."
스님은 인생살이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일도 잊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걸치고, 적게 갖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나 자신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의해 가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이다."
동화작가 정채봉과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와의 인연과 일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스님은 그가 출판사 직원으로 있을 때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한번은 스님이 쓴 글에 오자가 대여섯 군데나 있어 그에게 전화를 걸어 크게 화를 낸 뒤 더 이상 원고를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예고도 없이 그가 스님이 머물던 암자를 찾아왔다. 부랴부랴 밤차를 타고 사과하러 왔던 것이다. 스님은 당시 그의 모습을 '훈육주임 앞에 선 학생' 같았다고 표현했다.
어느 이른 봄에는 내의를 보내왔다. 함께 동봉된 편지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한다. "제가 첫 월급을 타던 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님 내복을 사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내의를 사드릴 어머님도, 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스님의 생신에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책의 제목을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고 정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요즘 세상에 딱 맞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이 말이 외떨어져 단순히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그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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